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1800년 12월,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John Adams)의 연방당(Federalist Party)은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민주공화당(Democratic-Republican Party)에게 백악관과 연방의회를 몽땅 내어주는 선거 참패를 겪었다. ‘1800년의 혁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선거에서 강력한 연방정부와 친영(親英)외교, 상공업육성을 천명하였던 연방당이 철저히 실각(失脚)하고 주(州)정부의 권한 강화와 친불(親佛)외교, 농업육성을 내세운 민주공화당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자, 아담스는 자신의 임기가 종료되는 1801년 3월까지 연방당이 사법부만이라도 장악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아담스는 1801년 1월 말에 자신의 국무장관인 존 마셜(John Marshall)을 대법원장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임기 종료 직전에 사법부법(Judiciary Act)을 통과시켜 연방법원의 관할권을 확장하고 연방 순회판사(巡廻判事)직을 신설하여 모두 연방당 인사들로 꾸역꾸역 채웠다. 임기 종료 전날인 1801년 3월 3일 늦게까지 임명장에 서명을 했다고 하여 이때 아담스가 임명한 판사들을 자정(子正)판사(Midnight Judges)라고 불렀다. 하지만 제퍼슨 정부가 들어선 다음 해인 1802년에 사법부법이 폐지되면서 아담스와 연방당의 처절한 ‘몽니 부리기’ 전략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기를 굳히자 많은 평론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무슨 행동을 할지에 대해 우려를 쏟아내었다. 선거에서 지고 이제 ‘잃을 것이 없는’ 트럼프가 이제 자기를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주요 부처의 핵심 관료들을 대거 해임하는 동시에 자기 입맛에 맞는 연방 판사들을 대거 임명하고, 자신의 정책을 고착화하는 행정명령을 남발하고, 대통령 자신을 포함한 측근들을 사면하는 등 임기 말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땡깡’을 부림으로써 새로 들어오는 바이든 행정부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라는 시각이었다. 이들의 예측대로 트럼프는 아직까지 선거 결과에 불복함으로써 바이든의 정권인수 업무에 큰 차질을 빚고 있고, 국방장관을 급작스럽게 해임함으로써 중동에서의 미군 추가 철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후의 순간까지 절대 변하지 않는 그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삼권분립(三權分立)과 상호견제(相互牽制)를 근간으로 한 헌법을 제정했을 당시 미국에서 정당(政黨)정치가 출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중요한 어젠다가 등장할 때마다 그때그때 의견이 맞는 의회 의원들끼리 서로 자유롭게 연합하여 자신들의 소신을 피력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하지만 뜻이 맞는 의원들 간의 단합을 공고히 함으로써 이들의 집단적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당의 탄생은 불가피하였다. 이로 인해 백악관을 장악한 집권당의 의원들은 당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헌법 정신에 따라 대통령을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옹호하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지난 4년 동안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한 트럼프식 ‘마이웨이’ 독주가 제대로 견제를 받지 않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해 가능했었던 부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삼권분립과 상호견제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이다. 행정부의 ‘똘마니’ 노릇이나 하려고 입법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입법부 위에 군림하는 ‘보스’ 노릇을 하기 위해 행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 간의 분립과 견제는 헌법이나 제도가 있다고만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양하는 균형 잡힌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은 오로지 헌법 정신에 입각한 유권자의 판단과 선택으로만 마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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