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 때마다 울음소리가 난다
낡은 경첩이 무게를 견디는 소리
흰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에
붉은 녹물이 번진다
녹은
끓어오르다가 식은 날들
흰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날들을 견디고
제 몸을 화폭 삼아
뜨거운 용광로 속 기억을 그려낸다
철컥
문이 잠기고 마침내
어둠에 갇힌 붉은 헛발질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장렬하게 산화하는 중이다


<감상> 대문이나 방문에 쓰이는 경첩은 아버지와 닮아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그 무게를 오랫동안 감당했을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된다. 오히려 가족이 자신을 버티는 힘이었는데, 슬하를 떠난 보낸 대문은 노쇠해지고 신음소리를 낸다. 바로 경첩의 삐거덕대는 소리는 아버지의 어깨가 들썩이는 소리와 잇닿아 있다. 붉은 녹물은 검은 얼굴과 멍든 몸에 새겨진 자화상이다. 철커덕, 문이 잠기면 스스로 장렬하게 산화(酸化, 혹은 散華)하는 아버지여! 이제 제 색깔마저 사라지게 할 세월들이 그저 야속해진다.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