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한동대 교수·유라시아 원이스트씨포럼 회장
정진호 한동대 교수·유라시아 원이스트씨포럼 회장

울독(울릉도와 독도)을 21세기의 지중해 동해의 배꼽으로 만들려는 목표로 출범한 유라시아 원이스트씨 포럼(약칭, 한동해 포럼)이 출범한지 6개월이 지났다. 11월 30일에는 처음으로 전 회원들이 함께 모이는 연말 정기 총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다같이 모여서 진지한 회의도 하고, 회원간의 정담도 나누고, 맛있는 만찬도 함께할 그런 꿈을 꾸고 있는데… 여전히 울독의 시계(視界)는 불투명하다. 3차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는 해외뉴스에 이어 한국에도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보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세상에 살게된 것이다.

세계가 주목한 미국 대선 역시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된 듯 하나 트럼프의 불복 선언으로 여전히 혼선이 지속되고 있다. 4년 후에 트럼프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코로나의 불확실성에 더하여 미국 대선 결과가 가져올 불확실성이 정치권의 시계 또한 오리무중으로 만들고 있다. 전 세계가 미국 대선에 촉각을 세우고 지켜보는 까닭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뜻일게다. 그러나 미국을 바라보는 남과 북의 정치권의 관심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클 수 밖에 없는 것은 최근 긴박하게 돌아간 남북미 관계를 포함한 깊은 역사적 애증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 150년은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흘러왔다. 남북관계의 극적인 전환점을 기대했던 2018년을 마치 빛바랜 오랜 추억처럼 만들어버린 것 역시 북미 회담의 결렬이 가져온 결과가 아닌가?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세 사람의 미국 대통령이 있다. 시오도어 루즈벨트는 러일전쟁 막판에 카츠라-테프트 밀약을 통해 우리나라를 일본에게 넘겨주어 식민의 역사를 열었다. 우드로 윌슨은 1차대전 중에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여 민족지도자들에게 구세주처럼 다가와 정의로운 나라 미국에 대한 커다란 기대를 갖게 하였고 독립의 희망을 안겨주어 3.1운동과 임시정부를 시작하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우리 대표단을 거부하여 실망시킴으로써 독립운동진영 중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희망을 걸고 레닌에게 달려가게 만든 결과를 낳았고 좌우 분열의 역사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다. 그리고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2차 대전 막바지에 우리나라를 일본 대신 분할하는  신탁통치안을 처음 구상했던 사람으로서 분단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들은 모두 미국의 국익에는 크게 기여하여 존경받는 대통령이었을 뿐 아니라 세계적 전쟁을 끝내고 평화조약을 체결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거머쥔 사람들이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종전 직전에 뇌졸증으로 급사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2차대전을 끝낸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 뿐인가? 미국 육군부 작전국의 지시로 38선을 30분만에 그어버린 미국 육군장교 딘 러스크는 마치 볼튼과 같은 전형적인 친일 정치인이었다. 후일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까지 역임했던 그는  한국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1년 9월, 미국이 패전국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열었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측의 요구를 들어주어 독도를 일본이 반환해야하는 부속 도서에서 제외시킨 장본이기도 하다. 그로인해 마땅한 우리 땅 독도를 지금까지 마치 국제적 분쟁지역인 것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같은 어둠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분명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을 치르며 미국의 도움을 받아 자유민주주의를 지켰고, 미군의 장기 주둔을 통해 국방 보다는 경제 발전에 주력함으로써, 세계가 놀라는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루게 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1958년 중공군을 본국으로 철수시킨 후, 자주국방을 외쳤던 북한이 거꾸로 경제침체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간 것과 대조적이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실리를 버렸다면, 우리는 자존심이 상할지라도 실리를 챙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우리가 이루어낸 경이로운 산업화와 민주화의 열매를 자랑하는 동안 북한은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하면서 미국 대통령과 세계 매스컴 앞에서 나란히 서는 또 다른 면모로 세계 무대에 깜짝 등장 하였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아우성인 동안, 북한은 나홀로 길을 걸어가며 국경을 걸어잠갔다. 그리고 이제 남과 북이 함께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유라시아 한동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분명히 남과 북의 새로운 변화와 연합, 그리고 상생의 시대를 열어야만 한다.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시대를 열고 울독의 시계를 밝히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우리는 막연히 미국만을 바라보고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이제 우리도 70년전 강대국의 줄 긋기 하나로 속절없이 분단을 강요당하던 그런 약소국이 아니다. 세계 6위의 군사국방력을 보유하고 10대 경제 대국으로서 대통령이 G7에도 초청받는 남쪽 대한민국은 효과적인 K-방역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북핵 역시 미국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낼만큼 세계인의 이목과 위기의식을 집중시키고 있다. 당분간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면, 우리는 이제 북핵 또한 싫든 좋든 현실로 받아들이며 북핵을 전제로 한 외교정책과 남북협상의 해법을 도출해야만 한다. 우리의 우방 미국이 이 어려운 국면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절대 의지할 수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을 둘러싼 4대열강, 그 누구도 우리가 연합하여 통일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길은 우리 스스로 개척하여 열어야만 하는 그 길인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소유한 미국 대통령이 선출되어도 그들 나라의 국익을 우선으로 할 것이기에, 냉혹한 국제정치 무대에서 우리는 번번히 희생을 당해왔고, 분단의 역사는 지속되었다. 오히려 세계의 이단아 처럼 비추어졌던 트럼프가 유일하게 남북 분단을 강요하던 긴 세월을 뛰어 넘어 처음으로 북한을 세계무대에 등장시켜 공식적으로 인정한 대통령이 되었던 아이러니를 기억해야 한다. 지난 3년간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늠할 큰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그 중에 가장 큰  두 가지 사건이 북핵과 남코로나로 상징되는 사건이다. 북핵의 등장과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냉전구도 속에서 한반도를 분단상황으로 묶어두려는 강대국의 국제적 이해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충분한 기회요인을 만들었다. 이제 최강국 미국의 권력이양기에 과거에 그랬듯이 북한이 선제적 무력시도를 통해 눈길을 끌고 긴장을 고조시켰던 그런 시도가 반복되어서도 안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지난 하노이 회담의 교훈을 통해 남북한 정부는 대미외교를 통해 냉전구도를 풀어보려는 과거지향적 방법론이 더이상 통하지 않음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대미 대중 다자외교가 반듯이 필요하나, 그것은 활과 화살의 남북 연합의 기초 위에서 마지막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바이든이냐? 트럼프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의 6개월 또는 4년은 역사상 가장 정치 경제의 시계가 종잡을 수 없는, 마치 태풍 전야의 울독의 시계처럼 오리무중으로 흘러갈 것이다. 바로 이 때가 기회인 것이다.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 미국의 주인이 부재한 그 시기에 우리는 남과 북이 다시 만나서 민족 자결권을 선언하고, 담대한 연합과 상생의 여정을 열어가야만 한다. 그리할 때, 새로 선출된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도 경쟁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며 스가 총리와 푸틴도 함께하는 신북방 시대도 열어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울독의 시계를 밝히는 길이며, 유라시아 한동해 시대의 앞길을 환하게 비추는 첩경이 될 것이다.

울릉과 원산을 오가는 크루즈가 다니고, 포항과 단천에 남북해양수산교류협력센터가 세워지고, 남북의 청년들이 오가며 학술대회와 축구시합을 하며, 울독에서 청년캠프를 함께 하는 시대가 열리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서는 반듯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수교가 선생되어야 한다. 그 역사적 사건을 이루어낼 남북 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을 바란다. 그리고 바이든이든 트럼프든 70년 넘은 마지막 냉전을 끝내고 다시 한번 노벨 평화상을 받는 미국 대통령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런 시대가 곧 도래하기를 믿음으로 기대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