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피부. 포스텍 제공
실제 피부처럼 ‘느낄 줄 아는’ 전자피부가 나왔다.

우리에게 만약 피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촉각도, 추위도, 통증도, 느낄 수 없어 브레이크가 없는 차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대응할 수 없게 된다. 피부는 단순히 장기를 보호하는 껍데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자극이나 기온의 정보를 제공하는 ‘신호체계’ 혹은 날씨를 알려주는 ‘기상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피부 전체에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촉각 수용체들은 만지거나 꼬집기와 같은 기계적인 자극이나 기온을 느끼고, 전기 신호를 만들어 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인공피부나 실제 인간처럼 움직이는 로봇 ‘휴머노이드’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 중인 전자 피부의 과제는 바로 온도와 다양한 움직임을 얼마나 인간의 피부처럼 느끼게 하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움직임이나 온도만을 각각 감지하는 전자피부는 있었지만, 인간의 피부처럼 온도와 다양한 움직임을 동시에 인지하지는 못했다.

정운룡 교수(왼쪽)와 유인상 박사.
포스텍(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정운룡 교수·유인상 박사, 미국 스탠포드대 제난바오(Zhenan Bao) 교수 공동연구팀은 온도와 기계적인 자극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다기능성 이온-전자피부’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과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사이언스(Science)지 20일 자를 통해 공개된 이 연구성과는 이온 전도체가 가지는 특별한 성질을 이용해 아주 간단한 구조로 만든 것이 큰 특징이다.

인간의 피부 속에는 꼬집거나 비틀거나 미는 등의 다양한 촉각은 물론 뜨겁거나 차가운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촉각 수용체가 있다. 이 수용체를 통해 인간은 기계적 자극과 온도 자극을 구분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발표된 전자 피부는 온도를 측정함과 동시에 피부에 기계적인 자극이 가해지면 온도에 큰 오류가 생기는 문제가 있었다.

IR카메라. 포스텍 제공
연구팀은 인간 피부가 촉각 수용체가 전해질로 가득 차 있어 변형이 자유로우면서도 망가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전해질을 함유한 이온 전도체 소재가 측정 주파수에 따라 측정할 수 있는 성질이 달라진다는 점을 이용해, 촉각과 온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다기능성 인공 수용체를 만들어냈다.

또, 연구팀은 이온 전도체에서 온도에만 반응하는 변수와 기계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변수를 도출, 전하 완화 시간과 정전용량, 2개의 측정 주파수만을 이용하도록 했다. 전하가 물체에서 빠져나가는 시간을 뜻하는 ‘전하 완화 시간’은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아 온도를 측정할 수 있으며, ‘정전용량은 온도에 반응하지 않아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다.

또 전극-전해질-전극의 간단한 구조로만 만들어져 상용화에서도 큰 이점을 가진 이 전자피부는 밀림, 꼬집기, 벌림, 비틀림 등의 여러 움직임에 대해 힘을 가한 방향이나 늘어난 정도는 물론, 힘을 가한 물체의 온도도 정확하게 측정해낸다.

자유자재로 늘리거나 변형할 수 있으면서도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다기능성 이온-전자피부’는, 웨어러블 온도센서나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와 같은 로봇 피부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1저자인 포스텍 유인상 박사는 “집게손가락이 전자피부에 닿으면, 전자피부는 접촉을 온도변화로 감지하며, 이후 손가락이 피부를 밀면 접촉된 뒷부분이 늘어나 움직임으로 인지한다”며 “이 전자피부가 온도나 움직임을 감지하는 원리는 실제 인간의 피부가 다양한 촉각을 인지하는 원리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공동 교신저자인 포스텍 정운룡 교수는 “이번 연구는 전해질을 이용한 전자피부 연구의 포문을 여는 첫 단계라 할 수 있다”며 “연구의 최종목표는 인간의 촉각 수용체와 신경 전달을 모사한 인공 전자피부를 만들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피부나 장기의 촉각 기능을 잃은 환자들의 촉각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성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글로벌프론티어 사업, 중견연구자 지원사업,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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