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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민주사회의 녹(綠), 뻔뻔함
[아침광장] 민주사회의 녹(綠), 뻔뻔함
  • 손화철 한동대 교수
  • 승인 2020년 11월 22일 16시 0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1월 23일 월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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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이 점입가경이다. 별로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도 계속해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이런저런 법적 술수를 동원하는 모습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의 함의를 생각하면 이는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번 미국 대선은 뻔뻔함이 민주주의를 녹슬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엄중한 경고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시민의 대표가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를 것을 모두가 동의하며, 그 법에 따라 지도자를 뽑고 여러 통치행위가 일어난다. 법은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여 만들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능성을 다 나열할 수는 없다. 결국 사회는 시민의 상식과 양심, 일정한 고상함을 전제로 해서 유지된다. 뻔뻔함은 이 전제를 부정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뻔뻔함은 묘한 개념이다. 뻔뻔한 태도나 행동은 도덕적인 비난이나 섭섭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만, 불법에 이르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따르는 가상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해서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이 바로 뻔뻔함이다. 자신의 삶과 전혀 일관적이지 않은 주장과 정책을 제시하는 정치가나, 자신들의 과오는 모른 척하면서 남들에게는 준엄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권력기관이나, 웅장하게 시험 거부를 한 다음에 재시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우기는 학생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누군가 상식과 양심, 그리고 고상함을 저버리고 뻔뻔하게 행동하면 사회의 작동에 문제가 생긴다. 뻔뻔한 사람 앞에서 보통 사람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그 결과 자기 유익에 집착하고 암묵적인 합의 사항을 어기는 사람이 이익을 보고 상식적인 사람은 손해를 보는 상황마저 발생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은 전형적인 뻔뻔함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주요 부처의 장관을 바꾸고 중요한 정책 결정을 내리는 것과 후보로서 선거의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물론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공연한 몽니 때문에 순조로운 정권 이양에 차질이 생기고 나아가 국익에 심각한 손해가 초래되는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선거제도가 상당히 허술한데도 미국의 지난 역사에서 이런 막무가내의 상황이 벌어진 일은 없었다. 그동안 기본적인 상식과 양심, 고상함이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뻔뻔함의 해악은 단기적인 사회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전염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특유의 뻔뻔함을 그의 정치적 기술로 자랑했다. 동맹국들과의 방위비 협상이나 인종차별 문제, 야당과의 관계 등에서 그동안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암묵적 합의와 도덕적인 기준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단기적으로는 본인에게 일정한 유익이 있었을지 모르나, 그 뻔뻔함이 사회 전반에 전염되어 미국은 형편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4년 미국을 뒤덮은 가짜뉴스와 혐오, 인종차별과 폭력, 언론의 양극화는 이제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가 뻔뻔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뻔뻔함은 민주주의와 법치를 망가뜨린다. 뻔뻔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고 언론이 뻔뻔한 기사를 쓰며 시민에 거기 전염되면 민주주의는 선동이 되고 법치는 법 기술자의 놀이터가 되며, 상호존중보다는 대결과 혐오가, 공존보다는 각자도생과 경쟁이, 신뢰보다는 음모이론과 의심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뻔뻔함을 물리치려 애를 써야 한다. 내 자신 그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 잘 하는 정치가, 글 잘 쓰는 기자, 유능한 의사와 법조인이라도 뻔뻔한 인간이라면 과감하게 거부하고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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