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다 친구 없는 철수가
생각할 만한 생각이 없고
말하고 싸우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철수가

샀다고 입을 수 있는 티 팬티가 아닌
소리쳐 부르면 ‘여기 있잖아’ 읊조리는
같이 놀고 싶은 사람, 시시한 사람
철수가 있었다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는 철수가

검은 양말을 신고
검은 모자를 쓰고
아로마 향이 통증인 날엔 철수를 달랜다
은단도 마찬가지니까 하염없이 철수를 달랜다

하얀 사람 빼곡히 들어선 하얀 집
하얀 기쁨
부스러기 흩날리는
하얀 나비 철수


<감상> 순이에겐 너무 시시하여 내세울 것 없는 철수가 있었다. 흔한 이름의 철수는 늘 가까이 있었기에 소중한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철수는 아마 순이의 가방을 자전거에 싣고 집까지 실어다 주었거나 짓궂은 장난으로 사랑을 표시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마음에 때가 묻어 이런 사람을 찾아볼 길이 없다. 하여 순이는 옛날 옛적의 철수를 달래고 있다. 하얀 집에서 하얀 날개를 달고 기쁨을 주었던 철수, 아마 철수도 오직 한 사람 순이를 저버리지 않고 사랑하지 않았을까.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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