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초혼은 망자의 혼백을 소리쳐 부르는 의식을 이른다. 생전에 입은 의복을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 서서 북쪽을 향해 이름을 세 번 외치는 고복 의례. 김소월 시인의 작품 ‘초혼’으로 널리 알려진 듯하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중략)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연전에 타계한 아버님 당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애틋한 메모를 발견했다. 푸른색 볼펜으로 정성껏 적은 ‘초혼’ 전문이다. 꾹꾹 눌러쓰시던 광경을 상기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생의 마지막 길목에 들어섰음을 예감하신 것일까.

한동안 잊었던 그 기억을 다시금 떠올린 이유는 야권의 유력 정치인 때문이다. 가수 장윤정의 노래 ‘초혼’이 애창곡이라니 뜻밖이다. 이전투구 살벌한 정치판 아닌가. 가사와 곡조는 다르나 눈물샘이 터질 듯이 문득 서러워진다.

한국은 장수 국가 멤버에 속한다. 기대 수명이 최장수국 일본과는 불과 한 살 남짓 차이다. 게다가 2045년 무렵 고령 인구 비율이 세계 제일 수준이 된다. 한데 주관적 건강 상태는 OECD 회원국 꼴찌다. 스스로 건승에 자신을 가진 이들은 의외로 적다. 우리는 건강염려증이 심한 편이다.

이는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병원을 찾는 강박 장애. 한 해 4천 명 가까이 진단을 받는다고 한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분석했다. 한국인 장수 비결은 김치와 건강염려증이라고.

인간의 수명과 명군의 함수 관계를 알려주는 통계는 흥미롭다. 장구한 역사가 흐르는 중국엔 대략 600여 명의 제왕이 존재했다. 그들의 즉위년과 치세기와 사망일은 상호 연관이 있었다. 요컨대 이십대 전후 등극해 이십 년 내외 재위하다가 오십대 중반쯤 죽는 조건이 최고의 명군이 되었다.

유능한 황제로 일컫는 당태종과 송태조 그리고 청나라 옹정제과 건륭제가 그러하다. 세종대왕 역시 21살 때 보좌에 올라 52세에 승하했다. 레임덕이란 말이 있듯이 오래 살면서 수십 년씩 역임한 권력자는 막판에 문제를 드러냈다.

문헌 기록이 남은 덕분에 왕들의 생애는 거의 정확하다. 고려의 임금들 평균 수명은 42살이고 조선조 국왕은 46살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명줄이 조금씩 늘었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연구에 의하면 고려 사람들 평균 수명은 마흔쯤이다. 조선 시대는 약간 높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불로장생. 노화 연구에 관한 획기적 성과도 나온다. 염색체 소실을 막는 텔로미어 연구가 대표적 사례다. 이를 발표한 블랙번 박사는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20세기 중반부터 수명은 꾸준히 증가했다. 이제는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강화 인류의 탄생을 바라본다. 인공 장기와 유전자 치료가 실례이다.

죽음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이를 수용하는 자세 또한 중요한 삶이다. 수많은 석학들은 일가견을 펼쳤다. 그 공통점은 당장의 행복을 강조하는 것이다. 죽은 후의 천국이 아니라 오늘의 극락을 얘기한다. 부재를 또 하나의 존재로 여기라고.

니체는 말한다.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다. 즐겁게 살아라. 시간은 한정됐기에 기회는 지금이다.” 톨스토이도 ‘인생론’에서 속삭인다. “현재 당신이 대하는 사람을 사랑하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외친다. “카르페디엠!” 현재를 잡으라는 뜻의 라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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