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네
미세먼지가 씻겨 간 오후
외투에 툭, 떨어진 햇살 한줌 물컹했네
잠시 병(病)을 내려놓고 걸어 다녔네
시청과 시립미술관이 까닭 없이 멀었네
정동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해 기우는 서촌에서 부스럼 같은 구름을 보았네
물고기는 허공이 집이라 바닥이 닿지 않는데
나는 바닥 말고는 기댈 곳 없었네
가파르게 바람이 불어왔네
내 몸으로 기우는 저녁이 쓸쓸했네
쓸쓸해서 오래 머물렀네


<감상> 내 몸은 맨발이어서 바닥 말고는 기댈 곳이 없네. 병도, 집착도 내려놓고 걸으면 저녁이 내 몸에 머물고 바람마저 슬며시 가라앉네. 출생증명서가 있는 시청과 예술적 감각이 출렁대는 미술관도 멀리 보이네. 그 사이에 ‘기적의 방’은 존재하고 있는지, 내게 찾아오기는 할는지 의문이네. 부스럼 같은 상처가 덕지덕지 하늘에 묻어 있네. 늙은 산은 노을을 스카프처럼 휘날리다가 상처까지 목에다 휘감네. 어슬녘은 흐린 빛깔로 모든 사물을 공평하게 감싸 안네. 참 외롭고 쓸쓸해서 오래 머물고 싶은 시간이네. 늘상 시인의 언어도 가슴 속 높고 쓸쓸함 쪽으로 향해 있다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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