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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단] 오후에게 속삭이다
[아침시단] 오후에게 속삭이다
  • 게오르크 트라클
  • 승인 2020년 11월 25일 16시 11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1월 26일 목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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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옅고 약한 태양,
과일은 나무에게 떨어지고,
푸른 방들 속에는 오후 내내
고요만이 살고 있다.

금속이 내는 죽음의 소리,
하얀 짐승 하나 쓰러진다.
갈색 소녀들의 거친 눈꺼풀은
낙엽 사이로 흩날린다.

이마는 신의 색깔들을 꿈꾸고
광기의 가벼운 날개를 느낀다.
언덕에는 그림자들이 휘돈다,
부패의 검은 띠를 두른 채,

휴식과 포도주 가득한 어스름.
슬픈 기타 가락이 흐른다.
너는 꿈을 꾸듯 등불 켜진
방 안쪽으로 들어간다.

<감상> 고요가 깃들고 내가 좋아하는 푸른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불안과 우울을 떨쳐버릴 수 있는 방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밖은 조락(凋落)과 절망과 죽음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도시 언덕에는 부패와 착취와 압제가 검은 띠를 두르며 난무하고 있다. 방 안만이라도 신의 색깔을 닮고, 부드러운 날갯짓으로 광기를 잠재우고, 슬픔을 리듬으로 가라앉힐 수 있다면 나는 조용히 밖을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신의 빛깔은 초록이나 푸른 색채라면, 밖은 갈색이거나 검은 색채일 것이다. 이 색채들을 한 빛으로 물들게 하는 게 어스름, 나는 등불 환하여 그림자가 더 큰 방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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