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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단] 묶인 배
[아침시단] 묶인 배
  • 정영주
  • 승인 2020년 11월 26일 17시 0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1월 27일 금요일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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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 미는 곳까지만 자유다
아니 구속이다
출렁, 물결이 미는 쪽으로
몸이 가다가 다시 돌아온다
묶인 줄 길이만큼의 목숨이 흔들린다
다시 오지 못하더라도
툭, 줄을 끊고 싶은 저 가없는 몸짓
묶인 자유가 풀린 구속을 바라보는 바다 곁에서
예까지 아무 기표 없이 흘러온 것을 본다
끝없이 나는 배로 묶여 있고
다만 줄이 가는 곳까지 흔들릴 뿐이다
바다가 저만치 갔다가 다시 와서
묶인 줄을 한 번씩 건드리고 간다
몸이 튕겨질 때마다
일렁이던 악기였던 몸을 기억한다
햇빛이 뜨거워질수록 물빛은
숨 막히게 푸르르고
푸르러 갈 수 없는 몸의 오지
시선만 그 금을 깨고 수평선을 넘나들다 온다
사는 일이 묶인 줄이어서
기껏해야 줄이 견디는 곳까지만 선택이다

<감상> 배는 항해를 위해 몸에다 밧줄을 그득히 사려놓는다. 그 밧줄 끝에는 무거운 돌까지 달아맨다. 심해에 내려앉은 돌에는 이끼가 끼일 것이다. 그물과 함께 건져진 밧줄은 항구에서 다시 봉분처럼 가지런히 쌓일 것이다. 쇠말뚝은 언제나 배를 묶는 동아줄을 기다리고 있다. 나를 옥죄어 온 쇠말뚝과 동아줄, 배는 그걸 잊어버리고 살았을 것이다. 다만 그 줄이 조금 길어져서 더 넓은 바다에 갈 수 있었던 건만으로도 만족했을 것이다.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내 몸은 쇠약해져 있었다. 이제 그 목줄에 감겨 풀려고 해도 풀 수가 없다. 죽음이 다가올 때 온전히 그 줄에서 풀려날 것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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