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에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驚愕)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는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滅裂)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 흔히 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서 시력(視力)을 회복한다.


<감상> ‘경악’이란 말을 이렇게 빛나는 사물에 쓸 수 있다니! 과일 대신 과물(果物)이란 말도 생경하지만, 한자어를 생동케 하는 시인의 말 부림이 경이롭다. 뿌리는 좋은 않은 박질(薄質) 황토에, 가지는 비바람들 속에서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을 대수롭지 않게 이겨낸 나무는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된다. 이에 시인은 경악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닥치는 시련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의지가 꺾이곤 했던가.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을 품고 있다.”(기형도의「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시구처럼 과목의 기적 앞에 나를 성찰하고 새로운 시력(視力, 詩力)을 가져야 하겠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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