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설마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나 걱정이 정말 현실로 다가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불법의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한편으론 시간의 위대함도 절감합니다.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해결사입니다. “사람이 못 하는 일은 시간이 한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나이 들면서 알겠습니다. 사람의 인식은 언제나 ‘나의 현재’라는 조건과 환경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뀌는 앞날을 내다보기가 참 힘듭니다. 홀로 쏙 빠져나와서 전체를 내려다보는 일은 여간해선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을 선각자나 선지자라고 해서 우리는 존중합니다.

옛날에 본 한 드라마(한명회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주인공 한명회는 미천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거들먹거리며 “내 손 안에 있소이다!”를 떠들고 다닙니다. 자기가 앞으로의 일들을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입니다. 그 장면에서 한명회는 꼭 자기 손바닥을 활짝 펴고 그것을 바라다봅니다. 마치 ‘내 손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요. 제게는 그 모양이 “쥐고 있는 것(욕심과 편견)이 없으니 보는 것이 자유로울 수 있지 않느냐?”라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만약 그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모든 당시의 책사들이 ‘빈손’이었다면 단종(김종서)과 수양대군(한명회)의 운명도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결과론이지만 그들의 싸움터는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잔뜩 붙들고 ‘나의 현재’밖에 보지 못하는 자들과 자기를 버리고 전체를 내려다보는 자가 싸우니 누가 이기겠습니까?

지나온 세월을 돌아다보니 세상의 통념이나 주변의 인정을 등지고 살아온 때가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부끄러울 때도 있었고 분하고 화가 나서 속이 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딱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쩐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쪽 길을 택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며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결과는 늘 좋았습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했습니다. 단 한 번도 시간이 저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전체를 내려다보는 예지력 같은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다만 무엇을 꽉 쥐고 살지는 말자고 다짐한 적은 있었습니다. 문득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가 생각납니다. 유명한 인상파(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의 순간적인 느낌을 표현함. 자연이 주는 인상을 표현했다고 하여 인상파라고 함) 화가 고갱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 않는 사내가 여기 있었다. 그러니 인습 따위에 붙잡혀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이 사내는 온몸에 기름을 바른 레슬링 선수처럼 도무지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것 보세요. 모두가 선생님처럼 행동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군. 나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소? 세상 사람 대부분은 그냥 평범하게 살면서도 전혀 불만이 없어요.」

한 번은 이렇게 비꼬아 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런 격언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도록 행동하라>는 격언 말입니다.」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돼먹지 않은 헛소리요.」

「칸트가 한 말인데요.」

「누가 말했든, 헛소리는 헛소리요.」” [서머싯 모옴, 『달과 6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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