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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포럼] 벌들을 위한 소야곡
[경북포럼] 벌들을 위한 소야곡
  •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 승인 2020년 12월 02일 18시 02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2월 03일 목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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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아르헨티나 작가인 보르헤스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불렸다.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했기에 국경을 넘나든 지식을 쌓았다.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한 그는 상호 텍스트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사고를 가졌다.

틈나는 대로 독서를 하기에 그의 신념에 공감을 느낀다. 모든 책은 다른 책을 언급했던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여행의 기술’을 읽다가 ‘훔볼트의 대륙’을 펼친 경우가 그러하다. 저자는 유람의 방식을 소개하면서 메스트르의 침실 여행과 훔볼트의 남미 기행을 실례로 들었다.

전자는 니체가 감탄했다는 글로서, 여행의 즐거움은 목적지 보다는 심리에 좌우될 수도 있음을 밝힌다. 별다른 노력 없이 파자마 한 벌로 가능하다. 후자는 장기간 준비와 엄청난 비용과 수많은 위험을 수반한 여정이다.

다윈의 인생을 바꾼 책자로 평가되는 그의 남아메리카 견문록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오 년에 걸친 탐험은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에 비견될 정도로 위대한 발자취. 게다가 요즘 돈으로 20억 가까운 자부담 답사였다. 본국의 안락한 일상 대신 가치가 있는 모험에 평생을 바친 선택은 경외감이 든다.

근자에 길은 길로 이어지듯이 벌에 관한 서적을 일독한 것도 유사한 결과다. 추석 무렵에 선산 벌초를 하다가 말벌과 한바탕 전쟁을 벌였다. 일방적 공격을 당하고 벌침에 쏘여서 부상을 입었다.

사전에 준비한 두 개의 분무용 살충제 도움을 톡톡히 보았다. 처음 발견한 동생이 “벌, 벌” 하는 겁에 질린 외침과 동시에 우리는 분무기를 난사했다. 눈앞에서 왱왱거리는 십여 마리 말벌은 약품 때문에 드론처럼 가만히 날았다. 공중전 하듯이 약을 뿌리며 대치한 야단법석. 갑자기 엉덩이가 따끔했다.

도서관 서적을 선택할 때는 우선 신서를 잡는다. 책장을 넘기는 촉감과 눈으로 읽는 비주얼이 깔끔한 탓이다. 벌을 다룬 책은 겨우 몇 권만 비치됐다. 미국의 리치 박사가 지은 ‘벌 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는 근년에 번역된 것이다. 말벌에 혼쭐이 나서 녀석들 성격이 궁금했고 재미있게 집중했다.

만약 당신이 다음 사항을 안다면 벌에 관한 상당한 교양을 가졌다. 오직 암컷만 침을 쏜다. 벌침은 산란 기관이 변한 것이다. 다섯 개의 눈을 가졌다. 자외선을 본다. 수벌은 아버지가 없으나 할아버지는 있다. 초식 동물. 일벌과 여왕벌은 유전자가 똑같다. 여왕벌은 수컷과 교미를 수차례 한다.

벌은 대략 2만 종쯤으로 추정한다. 그중 7종에 불과한 꿀벌이 우점종이다. 꽃과 더불어 진화한 벌은 육식성 말벌의 후손. 약 일억 년 전에 식물이 화려한 자태와 달콤한 향기를 풍기면서, 일부 말벌이 식육성 습성을 버리고 온순한 채식성으로 진화했다. 화분 매개를 해주는 대가로 꽃가루를 얻는다.

벌들의 본능적인 행동 덕분에 인간은 열매를 얻어 생존한다. 벌과 인간과 꽃식물 공생 관계는 역사가 유구하다. 한데 화원 파괴로 벌들이 사라진다. 이들의 멸종은 인류의 삶을 위협한다. 벌을 돕는 행동은 지구 환경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서식지 소실과 살충제 남용 그리고 갖가지 질병은 벌들이 직면한 도전이다. 야생벌 생장을 촉진하는 친화적 배려가 긴요하다. 가급적 집안 공간에 꽃을 심으며 식물을 유기적으로 키우자. 미국의 농업법은 토지를 야생 생물 서식지로 남기면 보상하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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