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역사 간직한 늠름한 신란고분 곁 경주시가지 한 눈에

선도산 오르면서 뒤돌아 본 서악동 풍경이 아름답다.

포항에서 가까이 있는 경주지역이지만 접하지 못한 곳이 생각보다 많다.

지난 11월 첫 주말에 간 경주 서악지구 선도산(仙桃山, 390m)을 올랐던 이야기를 이번 ‘힐링 앤드 트레킹’에 소개 하고자 한다.

선도산 들머리에 있는 서악지구 안내판.

경주 서쪽방면에 있는 경주국립공원 서악지구는 평소 자주 가지 않는 곳이라 유적과 산을 둘러 볼 기회가 없었는데 늦가을의 정취를 맞으며 찾아 나섰다. 신라29대 왕인 태종무열왕(602~661)의 능이 있는 경주시 서악동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서악지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보물 제70호로 지정된 경주서악동귀부(龜趺)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무열왕의 둘째아들 김인문(629~694)의 묘와 보물 제70호로 지정된 ‘경주서악동 귀부(龜趺)’에 눈길이 쏠린다. 정교하게 다듬은 거북 모양의 비석받침돌이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엿보게 한다. 김인문이 아버지 무열왕을 도와 김유신 장군과 함께 삼국통일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설명과 함께 따사로운 가을볕을 받은 큰 봉분이 더욱 늠름해 보인다. 김인문의 묘와 나란히 있는 묘는 무열왕의 9세손으로 나라에 공헌한 김양(金陽 808~857)의 무덤으로 큰 벼슬한 왕족답게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탐방객을 맞는다.

길 건너 태종무열왕릉이 있는 입구에는 때마침 왕릉 보수작업과 코로나 감염증 관계로 출입이 막혀 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다. 오래전에 들러본 왕릉을 기억하며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무열왕릉 입구 안내판에 있는 태종무열왕과 문명왕후의 재미나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 보여주는 대목이 탐방객을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게 만들어 주어 ‘이야기가 있는 경주여행’이란 안내판 제목에 걸 맞는 아이디어가 참신해서 마음에 든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춘추(무열왕)와 김유신장군의 두 누이동생(보희, 문희)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낸다. 언니 보희가 꿈에 서악에 올라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이 잠겨버렸다는 꿈을 동생 문희가 비단치마를 주고 샀다는 얘기와 김춘추의 찢어진 옷을 문희가 꿰매준 인연으로 김춘추와 혼인을 하여 훗날 문명왕후가 되였다는 ‘오줌스토리‘를 만화로 소개해 놓았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혼인동맹이라고도 전하는 이 사연은 통일신라로 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빠지지 않는 일화로 남아있다.

태종무열왕릉 일대를 둘러싼 담장을 따라 서악지구 첫 들머리인 서악동 골목길을 접어든다. 야트막한 산 아래 조용하고 깨끗한 집들이 반갑게 맞는다. 몇해 전 가을에 들렀을 때 구절초 음악제가 열렸던 기억이 난다.

서악동 마을 안쪽에 자리한 도봉서당 입구.

서악마을 고분과 삼층석탑 그리고 도봉서당 뒤쪽 주변에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마을에서 심어놓은 가을꽃을 보러 입소문을 들은 탐방객들이 찾아든다. 꽃이 피는 곳에 사람이 찾게 되고 꽃과 사람이 있는 곳에 음악이 있어 자연스럽게 가을꽃 축제와 음악회가 열려 ‘서악마을 구절초음악회’가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올 해는 코로나 등으로 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담장 낮은 집 뜰이 훤히 보이고 골목길은 깨끗하게 포장되고 흠 잡을 데 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 끝자락에 ‘도봉서당(桃峯書堂)’이 있다. 조선 성종 때 유명한 학자였던 불권헌(不倦軒) 황정(黃玎: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추보재(追報齊)를 훗날 후손들이 도봉서당으로 지었다고 한다.

서악동삼층석탑과 고분 그리고 구절초 꽃밭이 있는 곳에서 탐방객이 둘러보고 있다.

서당 뒤편에 마련된 주차장과 ‘서악동삼층석탑’ 주변으로 구절초 꽃밭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늦은 가을이라 꽃이 시들어 볼품이 없게 되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있는 구절초 꽃잎이 가을이 남아 있음을 알리는 듯하다. 커다란 고분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고 그 사이로 탐방객들이 따사로운 가을볕을 받으며 신기한 듯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다.

이곳 서악지구에 있는 고분 중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한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 등 신분이 밝혀진 능(陵) 외에도 무열왕릉을 능가하는 큰 고분들이 누구의 무덤인지 모른 채 여러 개가 줄을 이어 있다.

삼층석탑과 고분군을 지나 키 큰 솔숲 속으로 난 임도를 따라 선도산을 오른다. 뒤돌아보는 풍경이 멋지다. 고분과 삼층석탑, 선봉서당이 보이고 아직도 떠나지 않은 구절초가 하얗게 바람결에 춤을 춘다.

솔숲을 벗어나 키 작은 잡목들이 따가운 한 낮의 햇살을 받으며 임도를 달아오르게 하는 경사진 길을 간다. 첫 출발점에서는 밋밋하던 길이 점차 경사를 높이고 늦가을 뙤약볕까지 산객을 어렵게 한다. 쉬엄쉬엄 올라 8부 능선 부근에서 이정표를 만난다. 선도산 정상이 0.5km 남았고 ‘경주 서악동마애여래삼존입상’이 0.3km 남았다고 한다. 한참을 숨 가쁘게 올라와 탁 틘 조망에 시원함을 맛보며 눈 아래 펼쳐지는 풍광에 마음을 푼다. 좌측으로 경주 시가지가 훤히 보이고 너른 들판을 지나 남산 연봉이 잡힐 듯 자리하고 있다. 서악동 고분들이 줄을 이어 무열왕릉 쪽으로 나아가는 듯 서있고 우측 멀리 단석산이 까마득히 보인다. 조망을 즐기며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신라시조왕 박혁거세의 모후를 모신 사당(성모사) 모습.

신라 시조왕(始祖王) 박혁거세의 모후(母后)인 선도성모정령(仙桃聖母精靈)을 모신 사당(祠堂)이라는 ‘성모사(聖母祠)’에 닿았다. 성모설화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신성시되는 사당으로 임진왜란때 신라시조왕 위판(位版)을 임시 봉안했던 곳이기도 하다.

성모사 바로 옆 산의 암벽에 높이 6.85m의 거대한 여래상이 입체로 새겨져있어 놀랐다. 보물 제62호로 지정된 ‘선도산마애여래삼존입상’이 그기에 우뚝 서 있다. 옛 신라인들이 선도산 정상부근을 서방정토(西方淨土)라 생각하고 이곳에 아미타삼존불을 새겼다고 설명한다. 가운데 본존불의 모습이 범상치 않고 콧등 위가 빗금 치듯 잘려 나간 데다 양쪽의 보살상들은 어딘가에서 옮겨온 화강암을 다듬어 세웠고 한 쪽 팔이 떨어져 나간 모양이라 더욱 기이하고 또한 거대한 불상에 위압감과 신비로움이 묻어나고 옛 신라인들의 정서가 느껴지는 듯하다.

성모사와 삼존불상을 뒤로하고 선도산 정상으로 향한다. 200m 정도 올라가 만나는 정상에는 여러 기(基)의 돌탑이 세워져 있고 경주의 산악단체가 세운 정상석이 물끄러미 산객을 맞는다. 정상 주변은 예전에 난 산불로 큰 나무는 볼 수가 없고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라 오래 머물기에는 좋지가 않다.

신라시대부터 전해 온 ‘경주 5악(五岳)’중 서악(西岳)이 바로 이곳 선도산이며 남산이 남악(南岳), 백율사 뒤편에 있는 소금강산이 북악(北岳), 토함산이 동악(東岳), 경주에서 제일 높은 단석산이 중악(中岳)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 서악지구의 유적과 볼거리가 여럿 있지만 선도산을 비롯한 마애삼존여래입상과 성모사, 산 아래 고분군과 삼층석탑 그리고 태종무열왕릉과 함께 여러 왕들의 능이 있는 서악동 일대가 그리 복잡하지 않고 조용한 산행을 곁들인 힐링의 장소로 적당한 곳이라 말 할 수 있다. 시간이 나면 선도산 오르는 계곡에 있는 주상절리도 한번쯤 가 볼만한 곳이며 가을에는 들국화 향기를 맡으며 가을을 노래하는 낭만도 즐겨 봄직하다.

선도산 하산 코스는 고창(高敞) 오씨(吳氏) 문중 산소가 잘 다듬어진 쪽으로 떡갈나무 오솔길로 내려오는 게 훨씬 재미나고 운치가 있다. 끝자락에 있는 오씨 문중 제실 뒤로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이 늦가을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도봉서당과 마을 안길을 가로질러 통일신라의 기틀을 세운 태종무열왕이 잠든 왕릉을 나서며 짧은 트레킹이었지만 서악지구에 서린 신라의 긴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끼며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 것에 고마워하며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 서악(西岳)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배우는 ‘걸어서 자연 속으로’ 열여덟 번째 ‘힐링 앤드 트레킹’ 이야기를 맺는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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