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몇 년 전부터 학교 건물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던 예전에는 5층까지 걸어 올라갔습니다만 요즘은 2층도 타고 올라갑니다.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생들 이야기입니다. 4층에 있는 연구실로 가다 보면 2층, 3층에서 내리는 학생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베이터가 자주 멈추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끄러워서입니다. 요즘은 코로나 상황이라 어디서든 대화를 자제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런데도 엄청 떠듭니다. 머리 허연 노교수가 같이 타고 있는데도 1도 안중에 없습니다. 언젠가 한 번, 그때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였습니다만, 너무 시끄러우니 좀 조용히 하자는 주의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크게 떠드는 학생을 향해 입술에 검지를 갖다 붙이는 동작을 취했는데 힐끗 쳐다보고는 그냥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한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물론 몇몇 학생들의 문제입니다. 대다수 학생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체면도 알고 예의도 갖춥니다. 십여 년 전부터 대학생들의 학습태도도 많이 못해졌습니다만 일반 중고등학교의 상황만큼은 아닙니다. 몇 년 전에 sns에 올라온 한 교사의 하소연을 보고 깜작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XX년이다. 그걸 잘 몰랐는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그걸 알게 해 주었다. 수틀리면 선생 면전에 대고 “에이, XX년이…”, 하고 대드는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다”로 시작하는 그 글의 내용으로 판단한다면 우리 학교 교육은 거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큰 방향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젊을 때의 일입니다. 저희 집이 5층인데 4층집 아이가 콩콩거리는 것을 그 아래층 3층집 사람들이 좀체 견디질 못했습니다. 아래층에서 “도무지 젊은 사람들이 이웃에 대한 배려심이 없다”라는 거친 항의가 들어오고 위층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꼭 아이 한 번 안 키워본 사람처럼 야박하게 말씀하신다”는 대꾸가 나가고 하다가 급기야 쌍욕이 오고가는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긴급출동까지 해서 말렸지만 도통 진정이 되질 않았습니다. 궁리 끝에 그 이후로 그 집 아이를 하루 종일 저희 집에서 놀게 했습니다. 뛰어봐야 자기 집 천정이니까 걱정할 게 없었습니다. 집에 어른도 한 분 계셨고 아이들끼리도 잘 놀아서 저희 부부가 둘 다 밖으로 나갈 때도 염려할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3, 4년을 저희 집이 그 아이의 전용 어린이집 구실을 해냈습니다.

갑자기 오래된 과거지사가 생각나는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아마 나날이 희박해져 가고 있는 배려심과 공동체 의식에 대한 어떤 노파심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가 혹시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잘못된 폭력에 노출될까봐 걱정이 큽니다. 우리 아이에게 불리한 학습 환경과 열악한 교우 관계가 주어질까봐 많이 염려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우리 아이의 참(본)모습부터 먼저 살피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우리 아이가 나가서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빨강인지 파랑인지 노랑인지 보란지, 그것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 이름은 빨강>(오르한 파묵)이라는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너무도 가난한 죄수의 아내에게는 추레한 보라색 옷을 입혔고, 슬픔에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딸의 기다란 머리채에는 빨간 두건을 씌어 주었다.”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은 부모 모르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은연중에 부모의 색깔을 답습합니다. 부모 앞에서는 항상 ‘아름다운 빨강’일지 몰라도 밖에서는 파랑도 되고 노랑도 되고 보라도 됩니다. 우리 부모들이 솔선해서 ‘내 이름은 빨강’을 분명하게 외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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