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이베리아 반도 서쪽에 치우친 포르투갈은 근대 시기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주요 해상무역권이었던 지중해를 포함해 북해와 발트해 등 그 어디에도 활동하지 못하는 변방국가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의 흑사병 출현으로 온 유럽의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자 포르투갈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하여 대서양 쪽으로 뻗어 나간다는 전략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에 ‘카라벨(Caravel)’이라는 원양항해 선박 개발에 투자하여 서아프리카 해안 탐험을 이끈 ‘항해왕자’ 엔리케(Henrique), 서아프리카 해안을 남하하여 대륙 최남단의 희망봉에 당도한 디아스(Bartolomeu Dias), 희망봉을 돌아 동아프리카 해안을 북상해 인도에 도착한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등의 노력에 힘입은 포르투갈은 유럽의 대항해의 시대를 개척하였고, 이로 이룬 부(富)를 기반으로 유럽의 패권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의 경우에는 반도에 거주하였던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고 국토를 회복하는 ‘재정복(Reconquista)’ 운동에 국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이에 대항해의 시대 초창기에 포르투갈과 경쟁할 여력이 없었던 스페인은 포르투갈의 해양 패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카나리아 제도 남쪽의 대서양 지역(북위 26도 이남 지역)에서의 항해, 정복, 무역 관련 독점권과 모로코 지배권 등이 포르투갈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알카소바스(Alcáçovas) 조약을 1479년에 포르투갈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스페인의 후원을 받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에 발견한 서인도제도 지역이 이 조약에 의거하여 포르투갈의 손에 넘어갈 상황에 놓이자, 사면초가에 몰린 스페인은 결국 유럽의 최고 권위체인 가톨릭 교회에게 조약의 불공정성을 호소하며 이 이슈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세계의 양분(兩分)을 두고 벌어진 이 엄중한 국제 분쟁의 중재자로 나서게 된 인물은 다름 아닌 스페인 발렌시아(Valencia) 출신의 교황 알렉산드르 6세(Alexander VI)이었다. 알렉산드르는 서아프리카 카보베르데 제도에서 서쪽으로 약 480㎞ 떨어진 지점에 남북으로 경계선을 쭉 긋고 그 경계선의 서쪽 지역은 스페인이, 동쪽 지역은 포르투갈이 차지하도록 하는 칙령을 1493년 5월에 발표하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격언의 진수를 보여준 이 칙령으로 인해 중남아메리카 지역을 몽땅 잃을 처지가 된 포르투갈은 거세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결국 이 칙령을 근간으로 한 토르데시야스(Tordesillas) 조약이 1494년에 체결됨으로써 스페인은 신대륙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로써 16세기 유럽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번에 우리 통상산업본부장이 후보로 출마한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직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분쟁 조정에 있어서의 ‘엄정한 중립성 유지’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출신국이 휘말린 분쟁에서 상황이 자국에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것만큼 사무총장과 그의 출신국의 신뢰성과 도덕성을 해치는 행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본부장이 당선될 경우 ‘WTO에서 한국의 입지 강화 및 통상 분쟁 해소에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는 등 한국 편을 당연히 들어줄 것이라는 요지의 보도를 쏟아내었다. 일본과의 분쟁 안건 등이 산적한 우리 정부가 한국인 사무총장에게 ‘알렉산드르 6세’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에 본부장의 출마를 적극적으로 밀었던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일으키는 대목이다. 그런데 만약 WTO의 ‘우리 총장님’이 중립성을 지키는 과정에서 이런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중에 어찌 될 수 있는지는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았을 때 너무 뻔하지 않은가. 이번 선거에서 본부장께서 결국 선출되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아쉬워하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총알을 피해가신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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