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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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시인 김황원은 대동강변 연광정에 올라가 온종일 시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겨우 ‘대야동두점점산(大野東頭點點山)’이란 한 줄을 짓고 시상이 막혀 엉엉 통곡하며 정자를 내려왔다.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오다 밭두렁 초라한 울타리 밑에 손톱 만한 노란 꽃들이 숨어서 피어 있는 것을 보고는 섬광처럼 영감이 떠올랐다. 그는 “아! 바로 이것이야!” 하며 ‘소장서각점점화(小墻西脚點點華)’란 대구를 떠올려 울음을 거뒀다.

‘점점산’은 큰 것에 도취한 즐거움 ‘대흥(大興)’, ‘점점화’는 아주 조그마한 것에 심취한 감흥 ‘소흥(小興)’이다. 이처럼 대흥과 소흥을 대비 시키는 것은 옛날 시 짓기의 한 유형이었다. 소소한 흥취를 느끼는 것도 풍류였던 것이다.

앞을 보지 못했던 헬렌 켈러(1880~1968)의 전기에 ‘마이너 엑스터시(Minor Ecstasy)’라는 표현이 나온다. ‘소황홀(小恍惚)’로 번역돼 있다. 헬렌 켈러는 어느 날 갓 부화한 병아리를 두 손으로 살포시 쥐고는 여느 다른 모피(毛皮)에서 느끼지 못한 보송보송한 생명의 신비로움을 알고 오금이 저리도록 기뻐했다. 헬렌 켈러의 이 이상(異常)체험을 그녀의 전기작가가 ‘마이너 엑스터시’로 표현했다.

얼마 전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小確幸)’이란 말이 유행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수필에서 행복을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등으로 표현했다.

코로나19로 강제적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최근에는 빈둥거림을 뜻하는 ‘포터링(pottering)’이란 말이 유행이다. 뒷짐을 지고 먼 산을 바라보며 어슬렁어슬렁 멍 때리며 안마당을 걷거나, 화초의 이파리에 앉은 먼지를 한 잎 한 잎 닦아 내거나, 묵은 책장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 등이 포터링이다. 코로나 시대, 난장판 정치에서 고개를 돌려 스스로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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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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