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지난달 초 경주 보문탑 야외공연장에서 제9회 판소리명가 장월중선 명창대회에서 예인 장월중선 추모특별공연을 관람했다. 해마다 열리는 대회지만 올해는 ‘코로나 9’로 늦어졌다. 남상일, 박애리의 정감 넘치는 사회로 정동극장의 ‘화랑무’,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신영희 선생의 춘향가 중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는 부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정순임 선생의 심청가 중 뺑덕어멈 부분의 창을 감상하고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이호연, 박소연, 강효주의 경기민요를 감상. 이어서 남상일과 그의 조카가 함께 출연하여 부른 심 봉사 눈뜨는 부분과 희망가, 왕기철, 윤진철, 김학용 명인이 함께한 육자배기에 박수를 보내고, 동락연희단의 ‘판 놀이’에 한껏 신명이 났다.

오랜만에 눈을 씻고, 귀를 씻고, 마음을 털었다. 가멸찬 늦가을 한나절, 경주의 품격이 올라가는 시간이었다. ‘그래, 경주는 이래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역사를 품은 도시, 미래를 담는 경주’. 보문호의 물결 위에 부서지는 햇살, 가지마다 시든 단풍이 화들짝 놀라는 음악이 참 좋았다. 판소리의 거장(巨匠)이 우리 경주에 뿌리를 내린 것이 놀랍고, 그 따님이 대를 이어 꽃을 피우고 있어 놀랍다. 고맙고 고맙다. 불가에서 인연이란 말을 많이 쓰지만 정말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예향 호남에서 판소리명가의 뿌리를 경주에 내리다니. 우리 경주에 ‘판소리명가’가 있다. 얼마나 한 기쁨인가. 경주의 품격이다.

과일나무는 씨로 번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접을 붙여서 더 좋은 품종을 만들어낸다. 경주에서 새로이 접붙이고 뿌리를 내린 판소리다. 소중한 전통문화의 한 축을 옮겨 받은 경주다. 그 옛날 석가탑, 다보탑을 조성한 석공이 부여의 아사달이라고 한다. 그때는 유명한 석공을 모셔왔을 것이다. 그런데 장월중선 명인은 서라벌을 사랑하여 찾아오신 것이다. 따님 정순임 명창이 대를 이어 지키고 꽃피워가고 있다. 경주에 ‘판소리명가’가 지정된 것이다. 동서 문화의 화합과 융합을 일구어낸 것이다. 얼마나 좋은 인연이요, 아름다운 일인가. 새삼 마음이 설레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금년으로 제9회 판소리명가 장월중선 명창대회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나 경상북도, 경주시, 포항문화방송 등 후원 단체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겠지만 (사)한국판소리보존회 경북지부장이신 대회장 정순임 국가무형문화재 제 5호님의 각별한 노력의 결과였으리라. 이제 영남 사람들, 특히 경주인은 어떤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 불모지에 뿌리를 내려 발돋움하고 있는 판소리를 어떻게 발전시켜 전통문화의 한 축을 감당할 것인가 하는 것은 경주를 중심으로 영남인의 몫이다. 판소리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국악인도 많이 배출되어야겠지만 판소리를 사랑하고 감상하는 대중이 늘어나야 한다. 판소리를 사랑하고 감상하는 대중이 늘어나면 자연 판소리의 시연 기회도 늘어나고, 명인, 명창도 많이 배출될 것이다. 예술은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발전하고, 발전하는 만큼 다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다.

경주에 판소리명가가 있지 않은가. 판소리를 우리 경주의 예술로 승화시켜 가야 한다. 시민의 관심을 다시 환기 시켜야 한다. 시민의 관심을 환기 시키려면 다른 국악장르와 함께 공연할 기회를 늘여야 한다. “지긋이 눈을 감고 입술을 축이시며/ 뚫린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직일 때/ 그 소리 은하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초정 김상옥 시인의 시조 ‘옥저(玉箸)’다. 옥피리 소리와 더불어 판소리가 은하 흐르듯 자주 서라벌에 울려 퍼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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