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국회와 정치권은 남남대전(南南大戰) 중이다. 민주당은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한 점 한 획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입법화시킨다. 국민의힘 역시 자신의 주장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다. 결과는 174석의 민주당이 열린민주당 3석, 시대전환 1석, 기본소득당 1석, 친여 무소속 3석을 동원하여 국회를 좌지우지한다. 103석의 국민의힘이 처절하게 저항하지만, 3/5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 계열을 막을 방법이 없다. 총칼 대신 진영논리를 사용할 뿐 사실상 전쟁상태다. 두 정당 내부는 전체주의와 다름없다. “우리의 의견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결기가 있을 뿐이다. 상대의 의견을 듣거나 우리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면 ‘내부 총질자’로 몰아버린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법제의 공고화를 건너뛴 죄를 혹독하게 치르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제5공화국 말부터 시작되었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은 간접선거를 통해 손쉽게 정권을 연장하려 했다(4·13 호헌조치). 그러나 6월 항쟁의 압박으로 ‘6·29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대통령 선출방법이 직선제로 바뀌었다. 이로써 대통령의 정통성은 확보되었지만, 제왕적 권한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국회의 협치 부재도 문제였다. 소선거구제에서 양당 구도는 1개 정당의 과반을 가능하기 때문이다. 권역 혹은 연동형 비례대표 같은 연합·연립·연정의 국회를 만들 기회는 있었다. 바로 2016년 10월부터 시작된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12월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2017년 3월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이다. 그러나 각 정당은 대선과 총선의 승리만 몰두했을 뿐, 새로운 시대의 준비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었다. 2017년 1월부터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권력 구조 개편’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국정안정을 내세워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주장했다. 자당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부정했다. 그리고 여당인 상태에서 4년 중임제로 바뀌면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당(현 국민의힘 전신)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외치를, 국회가 뽑은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했다. 자당을 지지하는 영남권을 석권하고 다른 데서 선전하면 다수당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2017년 12월에서 2018년 6월까지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연장하기도 했지만, 당파의 이익으로 ‘권력 구조 개편’은 좌초하고 말았다.

기회가 있었다. 2018년 7월부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득표와 의석 비율의 불 비례성’을 다루기 시작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전신)은 기존의 소선거구제와 승자독식을 고수했다. 12월 민주당과 군소 정당은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한 후,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에서 개정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연동형 30석과 병립형 17석의 비례대표를 확보하기 위해 2020년 2월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을, 3월 민주당이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4·15 총선에서 미래한국당이 19석, 더불어시민당이 17석의 비례대표를 가져갔다. 비례 47석은 원래 정의당과 민생당 등 군소 정당의 몫이었다. 연동형을 무시하는 미래통합당의 몽니와 민주당의 권력욕이 국회가 토론과 타협의 장이 될 기회를 날려버렸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33년 전인 1987년 체제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고위공직자 청문회나 국정감사장에서 여당 의원들은 대 놓고 정부 편을 든다. 국회가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실하면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다. 국회에서 다수당이 입법독주를 자행한다. 소수의 의사를 소수의 비율만큼 다수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이라고 할 수 없다. 낡은 틀을 벗어야 할 시기다. 의원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권력 구조를 개편하여,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는 구조를 깨야 한다. 연동형이든 권역별 비례대표제든 ‘득표와 의석 비율의 불 비례성’을 극복해야 한다. 변화와 발전의 전제는 국회의원이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라는 자각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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