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덮고 한껏 자랑하는 바위산 모습 전 세계 트레커 손짓

코발트색 물빛을 한 미주리나호수위로 잔설이 남아 있는 바위산과 침엽수림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2020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너무나 혹독하고 암담한 한 해다.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이 한 해가 야속하고 원망스럽기만 하다. 꼭 일 년 전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전 세계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으로 닦아 올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3차 대유행이란 표현처럼 재확산 되어 연말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대면접촉을 할 수가 없어 사람 만나는 것, 어디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현실이라 격주(隔週)간 쓰는 ‘힐링 앤 트래킹’을 제대로 쓸 수가 없어 지난해 6월에 다녀온 이탈리아 동북부 알프스지역인 ‘돌로미티(Dolomite)산군(山群)’트레킹 스토리를 싣고자 한다.

돌로미티 산군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지역에 넓게 형성된 3천 미터이상 고봉이 18개나 있고 무수한 수직 바위산과 빙하, 호수 등 총면적 5천500㎢ (제주도 3배 면적)의 거대한 산군으로 전 세계 트레커들과 암벽등반가들에게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곳으로 스위스태생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건축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가히 ‘신(神)이 만든 조각품’이라 불리는 빼어난 산들이 들어 서 있다.

우리 일행들이 12시간의 비행 끝에 ‘베네치아’에 도착하여 버스로 4시간 가까이 달려 닿은 곳이 돌로미티 트레킹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산간마을 ‘산타 크리스티나’다. 전형적인 알프스 산록이 펼쳐지고 목가적인 마을풍경이 그림처럼 평화롭게 다가온다. 황혼에 비친 하얀 설산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짙푸른 침엽수림이 대조를 이루며 처음 맞는 이방인들에게 유럽에서의 설레임을 안겨준다.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돌로미티 트레킹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도저히 잠들 수 없을 만큼 밤 풍경 또한 유별나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하얀 산이 어둠에도 우뚝 솟아 주위를 압도하는 알프스의 밤은 깊어만 간다.

돌로미티 트레킹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세체다봉(2,518m)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트레커 모습.

이튿 날 트레킹의 시작점인 ‘오르티세이’로 이동하여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타고 닿은 곳이 ‘세체다 후테’ 라는 산장이다. 2천518미터의 ‘세체다’봉을 바라보며 다음에 당도하는 ‘후테(Hutte)’(쉼터 또는 산장)까지 알프스 2천미터급 능선을 오르내리는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없는 바위봉우리들이 병풍을 두른 듯 서 있고 능선과 산비탈에는 야생화가 지천에 깔렸다. 푸른 하늘, 높은 산, 너른 평원에 핀 야생화가 알프스를 일러준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트레커들로 산장과 능선이 낯선 사람 천국이지만 한사람도 낯설지 않고 행복한 모습을 한 자연 그 자체인 것 같다.
 

노란 야생화가 지천에 깔린 평원 너머 돌로미티의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돌로미티 자연경관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지천에 피어나는 들꽃 길을 따라 걷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는 듯 시원한 바람과 눈부시게 내려 쬐는 햇볕을 받으며 트레킹 나선 트레커들이 신선인양 신비롭게 보인다. 평균고도 2천미터가 넘는 능선을 넘나들며 알프스 천국에 빠져들 때 저 만치 오아시스 같은 산장이 나타나고 어김없이 트레커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3시간의 알프스 능선 걷기가 언제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빠르게 흘러간다. 산장 창가에 앉아 한껏 자랑하는 바위산들의 모습에 넋을 잃고 파스타로 시작하는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며 캔맥주 한 모금 마시는 기분은 세상에 부러 울게 없는 느낌이다. 이것이 진정한 힐링이고 자연 속의 행복을 누리는 일이라 여겨진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음 후테(산장)로 향한다. 푸른 하늘이 따라오고 산들바람이 볼을 스치며 먼 산 바위봉우리들도 트레커들을 향해 손짓한다. 노란 캘리포니아 양귀비(금영화)가 지천에 깔려 있고 꽃길을 걷노라면 사람이 꽃인 듯 분간하기 어려운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산장에서 만나는 각국의 사람들이 함께 떠들며 웃고 어린아이를 들쳐 업고 여기까지 온 가족들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알프스 풍경에 넋이 나갈 쯤이며 내려서는 케이블카에 몸을 싣게 된다. 다음날의 트레킹을 위해 하산한다. 숙소에서 맛있는 음식과 와인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느긋한 휴식의 시간을 함께하는 일행들 모습에는 평온함이 감돈다.

다음날은 광활한 초원을 가로질러 높은 바위산 고개를 넘어가는 코스다.

톱날같은 바위산아래 그림같은 빨간 지붕의 산장에서 트레커들이 쉬고 있다.
톱날같은 바위산아래 그림같은 빨간 지붕의 산장에서 트레커들이 쉬고 있다.

2천미터가 넘는 고원에 축구장 8천개 넓이의 대초원에는 야생화로 뒤덮여 있고 그 속으로 트레일(산이나 들판으로 난 길)이 나있어 끝도 없는 초원을 한없이 걷는다. 까마득히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을 향해 푸른 초원을 헤쳐 나가며 알프스의 진면목을 느껴보기도 한다.

고개를 어렵게 넘고 나면 그림같이 빨간 지붕의 산장이 톱니처럼 생긴 바위산 아래에서 트레커를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차와 차가운 맥주가 함께 입안을 달래주고 각국에서 모인 트레커와 라이더(싸이클링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돌로미티를 즐기고 있다.

파란 하늘과 눈이 박힌 바위산,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평원 사이로 트레커들이 걷어 가고있는 돌로미티 트레일.
파란 하늘과 눈이 박힌 바위산,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평원 사이로 트레커들이 걸어가고 있는 돌로미티 트레일.

길게 이어지는 하산길이 힘들어도 또 다른 풍광을 보여주는 덕분에 눈이 호사를 부리는 트레킹이었다. 이탈리아 동계스포츠의 성지로 불리는 ‘카나제이’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제3일차 트레킹은 ‘돌로미티의 테라스’라 불리는 ‘사스포르도이’에 올라 돌로미티의 속살을 보는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돌로미티 최초의 케이블카인 ‘사스포르도이 케이블카’를 건설한 ‘마리아 피아즈’를 기리는 ‘마리아 산장’에서 2천871미터에 위치한 ‘보에산장’까지 왕복하는 힘든 트레킹이었지만 하얀 설원을 걷는 색다른 경험도 가져본다. 설원에서 펼쳐진 일행 중 회갑을 맞은 회원을 위한 퍼레이드(?)도 열었다.

4일차에 오른 돌로미티산군중 최고봉인 ‘마르몰라다(3,343m)’의 설원이 생각나고 정상을 오르기 위해 세 번에 걸친 케이블카 탑승 또한 신기하기만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돌로미티 여러 바위산에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고 많은 희생자를 낳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참호전쟁 현장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눈여겨 볼 수 있었다. 돌로미티산군이 이탈리아 영토가 된 유래와 ‘트랜치코트’라 알려진 군복(참호용 외투)이 유럽의 멋쟁이들이 즐겨 입는 유명한 의상이 된 것도 알았다.

돌로미티 최고의 경관으로 꼽히는 트레치메 세 봉우리의 위용.

돌로미티 최고의 뷰(View)를 자랑하는 ‘트레치메’를 직접 본 것은 5일차 일정에서다. 1천미터 이상 수직암벽으로 이뤄진 세 봉우리의 거대한 모습과 대자연의 위대함에 왜소한 트레커들에게는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수많은 트레커와 암벽등반가를 매혹시키는 돌로미티의 상징 ‘트레치메’에서 자연의 오묘함과 신비로움으로 트레킹의 묘미를 절실히 느껴본 순간이었다.

넓은 돌로미티산군을 다 돌아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5박6일의 트레킹에도 감동의 연속이어서 다시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긴다. 코발트 물색과 침엽수림위로 하얀 설산이 호수에 내려 앉아 눈길을 끄는 ‘미주리나’호수도 다시 보고 싶고 이탈리아 알프스 최고 휴양지 ‘코르티나 담페초’의 고풍스런 시가지의 모습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세계3대 트레킹코스 중 하나인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산군을 돌아보는 트레킹이야말로 수많은 트레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감동적이었다.

지면이 할애되지 않아 더 많은 풍광을 담지 못해 못내 아쉽다,

코로나 확산으로 해외명산트레킹을 할 수 없는 현실이라 안타깝지만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 코로나가 극복될 수 있기를 필자 또한 산의 정기를 담아 빌어본다. 답답하고 갑갑한 일상을 달랠 수 있는 ‘걸어서 자연 속으로’ 열아홉 번째는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트레킹 이야기로 ‘힐링 앤드 트레킹’지면을 마감한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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