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축구 경기에서 득점할 위치를 잘 잡는 공격수 같다. 문제는 적절한 순간에 절묘한 공격포인트에 가 있는 그에게 같은 편 선수들이 패스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에 대한 군더더기 없는 대국민 사과로 새출발의 계기를 만들려 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의 어정쩡한 태도와 보수 언론의 비협조로 아무 주목도 받지 못했다. 다음 선거에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려던 작전은 아예 실패했다.

같은 편 보수진영 선수들은 패스만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애당초 김종인 선수가 득점 위치로 가는 것을 더 심하게 방해한 것은 상대편이 아닌 자기편 수비수였다. 게다가 공격수들은 오랜만에 넘어온 공을 자기편 골문 쪽으로 힘껏 차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문제나 윤석열 사태로발이 무거워 제대로 못 뛰는 여당 선수들은 멍청히 서 있을망정 표정만은 참 밝다. 이 뒤죽박죽 경기장에서 야당의 자살골이 펑펑 터지게 생겼으니 가만히 있어도 이길 모양이다.

곧 자살골로 이어질 멍청한 슈팅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 고질적인 것이 현 집권 세력을 비판하며 은근슬쩍 갖다 붙이는 엉터리 비교다. 며칠 전 한 보수 신문은 “문 정권 국정농단은 박근혜와 얼마나 다른가”를 사설 제목으로 뽑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독재’라는 말을 매일 입에 올린다. 각 매체의 칼럼리스트와 이른바 논객들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는 식의 표현은 물론, 북한이나 나치에 빗대어 정부를 비판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정치적으로 대척하는 세력에 대한 날선 비판이야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용인되는 자유다. 그러나 집권 세력의 잘못에 대한 비판이 적확해야 지지자를 결집시키고 상대에게 치명타가 된다. 과거에는 없었던 표현의 자유만을 만끽하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은 결국 자살골이 될 뿐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는 외국의 이름 없는 말(馬)장수와 기(氣)치료 아줌마가 검문도 없이 청와대에 드나들고, 아무 직함도 자격도 없는 인물이 국가수반의 해외 일정을 짜던 일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몰랐다는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최근의 상황을 ‘국정농단’으로 규정하면 듣는 사람은 어리둥절해진다. 장삼이사가 퇴근길 술 한 잔을 걸치다가 대통령을 비난했다 하여 잡혀가고 두들겨 맞던 것이 ‘권위주의 정권 때’이다. 그 시절을 못내 그리워하는 자들이 이제 와서 ‘권위주의 정권 때에도 없던 독재’라며 핏대를 세우니 헛갈리는 것이다. 독재정부의 악행이 별것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그 시절 본인들이 저지른 일을 돌이켜보니 새삼 치가 떨린다는 것인가.

은근슬쩍 어두운 과거를 끌어들여 너도 못지않다고 비난하면 속이 시원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교는 우리 모두의 뚜렷한 기억을 다시 소환할 따름이다. 지금 집권 세력이 싫은 것은 알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과거 국가권력이 고문과 폭력을 행사하고 권력자가 사적 이익을 알뜰하게 추구했던 사실이 은근슬쩍 없어지지 않는다. 그 시절의 과오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최소한 엉뚱한 비교로 자살골을 넣지는 말아야 한다. 김종인 대표는 바로 그 과거와 절연해야 야당이 비판과 대안 제시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음을 간파했지만 같은 편 선수들은 여전히 자살골을 선호한다.

오늘도 보수논객과 신문들은 문 대통령을 히틀러, 김정은, 전두환과 빗대며 마음껏 조롱한다. 하지만 그들의 거침없이 어설픈 자유가 바로 그 비교의 반증이다. 지금이 그 시절 같다면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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