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마다 묵직한 세월을 품은 '한옥의 멋' 그대로 간직

청송심씨 집성촌 덕천마을 전경

청송군 청송읍 덕천마을은 ‘청송 심씨 세거지, 집성촌이다’ ‘99칸의 전통한옥이 있다’로 알려진 곳이다.

덕천마을은 성씨를 통해 먼저 소개가 시작된다. 청송을 본관으로 하는 청송 심씨의 시조는 심홍부로 4세손 심덕부는 고려 충숙왕 때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고, 조선 개국공신으로서 청성부원군에 봉해진 후 청성충의백에 진봉, 후손들이 세계를 이어오면서 세 명의 왕후와 네 명의 부마를 배출한 조선의 세도가문이다.

또 심덕부의 아우 심원부는 고려 말에 전리판서를 지냈으며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심원부의 후손들도 유훈을 받들어 벼슬을 멀리하였다. 덕천마을은 심원부의 후손인 청송 심씨가 약 600년간 뿌리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곳으로 청송 심 씨의 대표적인 세거지이다.
 

99칸 심부자댁 송소고택 전경

청송 심씨 집성촌으로 잘 알려진 청송 덕천마을은 송소 고택, 초전댁, 송정 고택, 창실 고택 등이 있는 농촌 전통 테마마을이자,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송을 대표하는 마을 중 하나이다.

2005년 농촌진흥청의 농촌 전통 테마마을로 지정, 한때 청송 참소슬 마을로 불리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청송 덕천마을로 부른다. 청송 송소고택을 비롯한 고택 숙박 체험 및 슬로시티 체험 프로그램이 형성돼 있다.
 

덕천마을 고택체험을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이 떡매치기를 하고있다.

파천면 병부리의 사일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고 덕천리의 동쪽은 신흥천이 흘러 용전천으로 유입된다.

덕천마을은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의 ‘숨은 명소가 있는 농촌관광코스 10선’에 선정된 데 이어 2017년 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가을 농촌 걷는 길 4선’에도 선정됐다. 특히 ‘2011년 한국 관광의 별 체험형 숙박시설’로 선정된 송소고택이 있다.

송소고장(松韶古莊)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

△99칸 전통한옥 송소고택.

송소고장(松韶古莊)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사랑채. 전면을 향했을 때, 오른쪽에 큰 사랑채 왼쪽에 작은 사랑채를 배치했다. 큰 사랑채는 막돌과 긴 돌을 툭툭 다듬어 3단의 축대를 쌓고 집을 세웠다. 팔작지붕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 가뿐하다. 정면 5칸, 측면 2칸. 작은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을 올렸다. 작은 사랑채는 큰 사랑채보다 한두 발짝 뒤로 물러앉았는데, 이는 유교 질서를 구현한 설계다. 송소고택은 전체적으로 ‘ㅁ자’ 형으로 영남지방 특유의 양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로 들어가게 되므로 남녀유별의 ‘내외담’ 기능의 헛담

송소고택은 99칸이지만, 방이 14개인 것은 방과 칸의 개념이 달라서다. 칸은 건물 규모와 관련이 있다. 집의 기초가 되는 기둥과 기둥 사이가 칸이다. 방과는 다른 개념이다. 통상 방보다 칸이 많다. 정면 4칸, 측면 2칸 집은 ‘4×2=8’로 8칸으로 친다. 그래서 99칸이라고 해서 방이 99개는 아니다.

△예와 멋.

송소고택은 건물의 위용도 위용이지만, 전통적 예와 멋을 잘 구현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헛담’과 ‘구멍담’이 대표적인 예. 활짝 열린 대문을 들어서면 눈앞을 막아서는 담이 있다. ‘ㄱ자’를 아래위로 뒤집어 놓은 형태의 헛담이다. 집 밖에서 보았을 때 여인네들이 기거하는 안채 움직임을 자유롭게 만들어주려는 배려의 소산이다. 헛담을 기준으로 여인네들은 오른쪽으로, 남정네들은 왼쪽으로 돌아 각각 안채와 사랑채로 들어가게 되므로 남녀유별의 ‘내외담’ 기능이다.

사랑채 쪽에서 보면 6개의 구멍이 나 있지만, 안채를 볼 순 없다. 안채 뒤를 돌아 여자들이 머물던 안사랑 쪽에 가면 구멍담이 나온다. 담장 안쪽에는 분명 구멍 3개가 나 있는데, 사랑채 쪽 바깥에서 보면 구멍이 6개다. 망원경 원리를 역이용한 셈인데, 사랑채에 손님이 몇 분이나 왔는지 관찰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사랑채에 손님이 몇 분이나 왔는지 관찰할 수 있는 구멍담

청송 심씨 11대 종손인 심재오(68) 선생은 “집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제대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시들시들 병이 듭니다. 고택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일반인들이 전통을 체험할 수 있도록 140여 년 전통의 고택을 개방하게 됐다”고 한다.

고택지킴이로서의 고충을 묻자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을 하며 환히 웃어 보였다. “밤늦게 수건이며 비누를 들고 방문객들 방을 오가다 보면 과거 만석꾼의 종손 체통에 조상님들께 면목이 없다 싶어도 문중의 소중한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길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힘이 난다”며 미소로 화답했다.

△송소고택 왼편 마을 깊숙이 자리한 초전댁.

초전댁은 청송 심씨 석촌공파 17세이 심덕활 공이 요절한 아우 의 양자로 입적한 친아들의 네 번째 돌을 기념해 1806년에 건립됐다니 시대의 가세를 가늠케 한다.

초전댁은 토담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고 전면의 대문을 중심으로 우측 편으로 큰사랑 공간이 자리하고, 좌측 편은 작은 사랑이 온돌방 좌우로 외양간과 고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칸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2칸 대청이 자리하면서 좌우에 온돌방을 두어 정침을 구성하고 있다. 대청의 좌측 편은 2칸의 안방과 부엌이 연결되어 정침의 좌익사로 구성되어 있고, 대청의 우측 편은 건넌방과 창고가 연결되어 정침의 우익사로 구성되어 있다.
 

창실고택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창실고택.

창실고택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3월에 지어졌는데 청송 심시 집안의 화목한 우애가 깃든 곳으로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송소 심호택 선생의 동생 심영택이 결혼하여 분가할 당시 송소고택의 영향과 도움을 받아 지은 집이다. 팔작지붕의 사랑채는 날개를 펼치고 방금 하늘에서 내려온 듯 경쾌하다. 고택의 건물은 모두 벽면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추운 산간지방의 완전한 뜰집 모습을 갖추고 있다. 당시 심 부자의 부를 상징하듯 세간 집으로는 매우 규모가 큰 27칸이며, 고택의 왼편으로 큰 마당을 두고 본채와 따로 떨어진 곳에 방앗간과 마구간을 두었다.
 

조산무더기

△인위적으로 쌓아올린 동산 조산무더기.

조산무더기란 액운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산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의 이름이 도적봉이라고해 마을에 부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해 인력으로 작은 산을 쌓아 시야를 가렸다고 한다. 하지만 조산 무더기의 실제 기능은 협곡을 타고 마을을 들이치는 겨울의 북풍한설을 막기 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생태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그냥 늪지로 방치되던 것을 몇 해 전에 정비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사색의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자연 그대로 원형을 파괴하지 않고 살짝 인공적인 가미만 해놓아 조용히 걸어가기에 참 좋은 곳이다. 또한, 계절에 따라 작고 예쁜 꽃들이 피어나 사람들을 반긴다.
 

찻집으로 운영하고있는 고택 덕다헌

△나지막한 한옥 따스한 차 한 잔.

차를 마시며 덕을 다스린다는 ‘덕다헌’ 지금 ‘백일홍’이란 찻집이 운영되고 있다. 고택이 즐비한 이곳에서 한적함과 옛 멋을 즐기며 걸었다면 잠시 이곳에서 따스한 차 한 잔으로 마음과 몸을 달래도 좋으리라. 혹 이곳 한적한 툇마루에 걸터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조용한 가운데 소소한 행복! 사색도 즐겁고, 아무 생각 없이 빈둥빈둥 즐기는 것도 국제슬로시티 청송에 잘 맞은 행복이 아닐까.

이 외에도 항일의병장 소류 심성지 선생이 1904년까지 후학을 가르쳤던 경상북도 등록문화재 제497호인 소류정과 청송 심씨 재실인 경의재, 청산리전투에 영웅 철기 이범석 장군이 이곳 송정고택에 내려와 한 달씩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심신을 단련했다는 고택 뒤편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있다. 철기 장군은 항상 이곳을 걸으며 사색에 잠겼고 홀로 대한민국 미래에 대해 구상을 하거나 정치적 상처에 마음을 치유한 곳 큰 소나무 아래 기대서서 내려다보면 덕천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철기 장군 길을 걸으며 잠시 이곳에서 마음을 풀어 놓고 쉬어가면 어떨까.
 

이창진 기자
이창진 기자 cjlee@kyongbuk.co.kr

청송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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