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현재 생존하는 한국인 미술가 중 가장 비싼 가격에 그림이 팔리는 작가는 현대미술가 이우환 화백이다. 며칠 전 KBS TV에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 거주하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 관하여 방영되었다. 2016년에도 언론에 알려져 공개된 것이라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로 내용을 좀 더 심층 취재하여 다루었다. 전 국민들이 고가의 미술품 유통이 어떤 루트를 통하여 어떻게 거래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동안 한국의 메이저 화랑이나 옥션을 통하여 여러 가지 소문이나 사실들이 이번 사건을 통하여 일부분이나마 팩트였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우환 화백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한학 수업을 받았다. 진주지역의 문인화가 동초 황견룡을 통하여 서예와 기초 수묵그림의 이치를 터득하였다고 한다. 1956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후 일 년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1961년 니혼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선배인 곽인식 작가와 친분을 가지며 영향을 받았다. 1967년 도쿄의 사토화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모노하 운동을 펼쳤다. 모노(物)는 작품을 제작할 때 사물에 존재성을 부여하기 위해 인공을 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제시하여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을 말한다. 조각가 세키네 노부오와 조우하며 모노하의 이론을 마련하여 국제적 미술가와 이론가로 나아갔다. 일본 메이저 화랑인 동경화랑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펼쳤고 한국에서는 서울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러 번 가졌다. 최근에는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서 작업을 선보이며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런 작가로 자리 잡았다. 작년에는 중국의 상하이 PSA 현대미술관에서 대작을 선보이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거장으로 화제를 모았다.

제4회 에꼴 드 서울에 초대된 이우환(1978)

필자는 젊은 청년시절 이우환 작가를 만났다. 1979년 여름 대구현대미술제에 대구를 찾아온 그를 대봉동 리화랑에서 볼 수 있었다. 당시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의 이우환 작가는 40대 젊은 작가였다. 해박한 모노예술의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며 개념미학의 대가다운 모습을 보였다. 리화랑에 전시된 일본작가들의 작업에 관하여 실공간과 허공간 그리고 여백에 대하여 간단히 들은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날 저녁 대구시내의 약전골목에 위치한 여관의 2층에 투숙할 때 안내하여 준 일도 있었다. 좁은 여관방에서 그는 물감을 펼쳐 8호 정도 크기의 캔트지 위에 점·선·면을 드로잉 하였다.

젊은 필자에게 드로잉 작품 한 점 그려줄까? 하고 물어 왔으나 처음 만나는 사이라 서먹서먹하고 일본식 예의의 표현이라 생각되어 정중히 사양하였다. 그때도 그는 익히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어 작은 소품 이라도 준다면 염치불구하고 한 점 선물 받고 싶었던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70년 대 말에서 80년 대 까지 이우환 작가는 점·선의 단순화된 개념으로 서구적 재료와 동양 정신의 미학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젊은 시절이라 갤러리를 통한 작품이 판매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90년 대 부터는 한국의 미술시장이 본격화 되었고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과의 친교를 통하여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이어서 2000년 대 이후부터는 미술시장에 옥션이 도입되고 과열 되면서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번 보도를 통하여 근황을 알게 되었고 핼쑥해진 얼굴에 근심어린 행동이 애처로워 보였다. 취재기자가 찾아간 일본 현지 내 가마쿠라시에서 거주하는 작가의 자택입구에서 소리치는 그의 뒷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뒤따랐다.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 경찰 부를꺼야! 경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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