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저도 이번으로 익명 기부는 그만둘까 합니다. 저와의 약속 십 년이 되었군요. 우리 이웃이 좀 더 나은 생활과 함께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키다리) 참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나누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끼고, 배우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매년 12월 하순이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거액의 기부금을 내 온 ‘대구 키다리아저씨’가 지난 22일 5004만 원 짜리 수표와 함께 전한 편지다. 대구 키다리아저씨의 기부는 지난 2012년 1월 시작됐다. 그는 모금회 직원들이 이름과 직업을 물었지만 한사코 “묻지 말아달라” 손사래 치며 5000만 원 짜리 수표 두 장이 든 봉투를 전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같은 해 12월에도 그는 1억2300만 원 짜리 수표 한 장을 모금회 근처 국밥집으로 직원을 불러 건넸다.

키다리아저씨는 그 후 매년 1억2000만 원 안팎의 기부금을 공동모금회에 전했다. 지금까지 그가 모금회에 열 차례에 걸쳐 기부한 성금이 모두 10억 3500여만 원에 이른다. 키다리아저씨는 모금회 직원들과의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나는 마중물 역할을 할 뿐, 많은 사람이 ‘키다리 행진’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부자 아저씨라고 부를까도 싶지만 그건 아저씨를 모욕하는 일입니다. 마치 아저씨에 관해서 중요한 점이 오로지 돈 뿐인 것처럼 들리니까요. 게다가 부유함은 본질적인 특성도 아닙니다.…아저씨 키는 틀림없이 앞으로도 계속 크겠죠. 그래서 저는 아저씨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겠어요.” 미국 작가 진 웹스터(1876~1916)의 원작 동화 ‘키다리 아저씨’ 속 고아 소녀 주디의 말처럼 대구 키다리아저씨의 ‘키다리 행진’ 소망은 우리 사회에 계속 퍼져 나갈 것이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의 ‘10년의 약속’은 이제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100년의 약속’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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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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