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지난 일요일 등산 겸 오어사와 선무도로 이름난 골굴암을 탐방했다. 두 사찰이 모두 원효와 관계가 있고 안내판에 화쟁사상을 밝히고 있어 화쟁사상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화쟁사상은 대립적인 이론들을 조화시키려는 사상. 반목과 대결의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어가는 한국 불교의 특징적 사상으로 원효가 집대성했다. 불교이론들이 매우 다양하고 논쟁이 격심하여 각 이론들 간의 충돌이 심했다. 이러한 상호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창안한 것이 화쟁(和諍)의 방법이다. 모든 불교 이론들의 논리적 근거를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일심(一心)에 두었다.

원효에 따르면 진리를 전달하고자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와 진리가 고정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는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이다. 언어는 진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왜곡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언어의 이중적 속성의 바탕 위에서 하나의 이론에 집착하는 극단을 버리고 긍정과 부정을 자유자재로 하며, 경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구체적인 화쟁을 전개한 것이다.

우선적인 화쟁의 방법은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고 부정을 통하여 집착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부정만으로 집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정 자체에 집착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부정의 부정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하여 긍정과 부정의 극단을 떠나게 되면, 긍정과 부정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된다.

화열이쟁(和悅而諍)이란 말이 있다. 화기애애하면서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히는 것. 공자가 고향마을에서 생활 때는 공손하고 겸손하여(恂恂)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이했고, 종묘와 조정에 계실 적에는 말을 잘 하시되 매우 삼가 하였다. 하대부들과 이야기할 때는 화목하고 즐거웠으며, 상대부와 이야기할 때는 온화하고 공손하였다. 군주가 계시면 공경하여 편안하지 못한 듯이 하였고 태도가 엄숙하였다. 장소와 상대에 따라서 분위기를 맞추어 옳고 그름을 밝히면서도 온화하고 화목하고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이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임연(任延)을 무위(武威) 태수로 임명하는 자리에서 “상관을 잘 섬기어 명예를 잃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니, 임연이 “충신(忠臣)은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사정(私情)에 매이는 신하는 불충(不忠)이며, 바른 것을 이행하고 공정함을 받드는 것이 신하의 도리요, 상관과 부하가 부화뇌동하는 것은 폐하의 복이 아니오니, 상관을 잘 섬기라는 분부를 신은 따를 수 없습니다.” 라며 황제의 명을 거슬렀다. 황제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그 시대에도 광무제는 “그대의 말이 옳소”라고 수긍했다고 한다. 감히 ‘어느 안(眼) 전’이 아니라, 부드러움 속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 받아들이는 것이 ‘화열이쟁’이다.

오어사(吾魚寺)에 얽힌 원효와 혜공의 이야기나 자장암, 원효암 이야기, 원효스님의 열반성지요, 선무도의 총본산인 골굴암 마애불 이야기는 두고 뜬금없이 화쟁사상과 화열이쟁을 어설프게 말해 보았다.

‘뜬금없이’란 말은 분위기나 주제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쓰는 말이다. 5일장에 농산물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흥정을 한다. 농산품은 공산품과 달리 일정한 가격이 없기 때문에 흥정하여 금을 매긴다. 이렇게 서로 값을 매기는 것을 ‘뜬금’이라 한다. ‘뜬금없이’는 일정한 값 매김도 없이 란 뜻으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는 말이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로 정했다니 뜬금없이 화쟁사상을 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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