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환 동부본부장
황기환 동부본부장

기성세대에게 부조금 문화는 또 다른 고민거리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청첩장과 부고 탓에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왠지 받은 만큼 줘야 하는 ‘거래’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서로 의지하고 돕는 ‘상부상조’에서 유래한 우리의 오랜 관습이다. 저마다 과도한 부조금에 투덜대면서도 소중한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전하는 이유다.

경조사를 이웃끼리 서로 챙기는 부조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과거에는 곡식이나 술, 아니면 노동력을 제공했다. 최근에는 계좌이체는 물론, 대행 서비스까지 생겼다. 어쨌든 부조 문화에는 나눔의 미덕과 정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유사한 미풍양속으로 두레와 계, 그리고 품앗이가 있다. ‘두레’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농사를 지을 때뿐 아니라 마을에 큰일이 있을 때도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눴다. ‘계’는 서로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돈이나 곡식을 모아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해 쓰도록 했다. ‘품앗이’는 시기와 계절에 상관없이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번갈아 가며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김장할 때 이웃끼리 서로 돕는 것에서부터 모내기, 김매기, 길쌈까지 다양한 곳에서 이뤄졌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서로 돕는 공동체 생활 풍습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우리의 미풍양속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전통적 미풍양속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최근 법원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에서 이른바 ‘스펙 품앗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약자가 혜택을 보는 자랑스런 미풍양속인 품앗이가 학벌과 부의 대물림에 활용된 것이다. 청첩장과 부고를 접하고 얼마를 내야 할까 고민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스펙 품앗이’를 바라보는 기분이 씁쓸하다. 일반적인 일로 ‘정경심이 십자가를 졌다’는 우리 사회지도층의 자녀들을 위한 ‘스펙 품앗이’ 관행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황기환 기자황기환 동부본부장
황기환 기자 hgeeh@kyongbuk.com

동남부권 본부장, 경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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