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면역력 소개하는 '들풀 밥상'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 표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구촌 인간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온 가운데 자연의 면역력을 소개하는 ‘들풀 밥상’ 요리책이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다수의 방송을 통해 잘 알려진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의 신간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궁편책)’는 단순한 레시피북에서 탈피하며 요리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들풀에 담긴 시간을 풀어낸 이야기, 그리고 잡초로 폄하되던 가치를 끄집어낸 그림이 곁들여진 이 책은 요리 인문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지면도 예상할 수 없게 파격적이고 다채롭지만 결국 전하는 메시지는 명료하기에 조화롭다.

△들풀의 재발견, 임지호의 재발견

주재료인 거칠고 투박한, 더러는 먹어도 될까 싶게 얼핏 하찮아 보이는 들풀이 사실은 얼마나 고운지 그는 안다. 요리 과정을 보지 않고서는 들풀로 만든 음식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도, 차림새도 다채로운 이유가 여기 있다. 그의 손을 거치면 건강한 음식도 충분히 맛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

그래서 임지호의 요리는 마냥 고졸하지도, 매끈하지만도 않다. 한편 그가 들풀을 대하는 부드럽고 섬세한 그의 눈빛과 손길을 담아내는 것이 기획 단계부터 중요하게 다뤄진 점이었다. 지극히 향토적인 재료를 세련되게 풀어내는 그의 결을 고스란히 녹인 디자인을 통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임지호의밥 소개이미지
△재료 스케치에 대하여

요리 사진과 더불어 저자가 직접 그린 스케치가 수록됐다. 스케치는 재료가 품은 본연의 기운을 표현한 것이며 동시에 해당 재료가 쓰인 요리의 디자인이기도 하다. 재료로 쓰인 들풀의 성정에 맞춰 음식을 구상했기에 이처럼 재료와 요리 두 가지의 스케치가 일치할 수 있었다.

△표제 속 밥과 땅의 의미

‘시작과 끝이 사람을 향하는’ 출판사와 저자의 지향점이 일치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임지호의 밥’이라는 간결하기 그지없는 표제가 나오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책에 실린 모든 요리는 ‘밥’이라는 단음절 단어가 함의하는 인간 존엄성, 그 거룩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밥을 먹었냐는 물음이 안부 인사로 쓰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나. 밥은 이런 것이다. 반드시 쌀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주린 배를 채워주는, 그리고 누군가와 나눔으로써 마음부터 온기가 차오르는 것.

한 가지 더, ‘땅으로부터’ 비롯된 들풀로 지은 밥이다. 그 자체로 뭉뚱그려 불리는 들풀은 식재료로는 아예 다뤄지지 않거나 반찬감 정도로 취급된다. 아마도 너무 흔해서겠지만 알고 보면 그만큼 강인하고 굳세다는 반증이다. 들풀의 저력에 주목해 들풀만으로도 훌륭한 한 끼 식사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들풀이 주재료인 한 끼, 그리고 하나의 들풀을 뿌리·잎·꽃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요리에 선보였기에 목차 역시 들풀의 각 부분으로 나뉜다.

저자 임지호 자연요리연구가는 자연이라는 이름에 속한 무수한 생명이 모두 ‘또 다른 나’라는 신념을 지닌 그는 무엇 하나 허투루 대하는 법이 없다. 재료이기 전 하나의 생명이었던 자연의 성품을 헤아리는 것에서 그의 요리는 시작되고, 그 끝은 음식을 먹는 사람을 헤아리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임지호의 요리는 심성을 만들고 사람을 살린다.

그의 남다른 행보는 국내외를 아우르며 주목받는다. UN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중요 행사에 초청을 받아 요리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싱가폴 수상 만찬과 가봉 대통령 만찬을 진행하며 한국의 맛을 널리 알린 독보적인 음식 문화 사절이다. 국내에서는 SBS 스페셜 ‘방랑식객’, ‘잘 먹고 잘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를 통해 잘 알려졌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다큐멘터리영화 ‘밥정’이 세계 3대 다큐멘터리영화제인 캐나다 핫독 영화제에서 2019년 상영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2020년 10월 국내 개봉하면서 그에게 향한 세간의 관심이 더욱 뜨겁다. 최근 SBS, KBS, EBS 등 다수의 방송 출연이 그 열기를 대변하고 있다.

들풀에 응축된 힘이 어디까지 승화될 수 있는지, 밥상 위에 펼쳐진 그들의 황홀한 변신을 확인해보길 바란다.

발행인 김주원 궁편책 대표는 “땅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저자와의 책 출간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발행인은 기획의도가 담긴 에필로그에서 그 철학과 과정을 밝히고 있다.

저자가 몸담은 강화도의 산과 들, 갯벌까지 넘나들며 들풀과 들꽃을 채취하면서부터 시작된 동행 취재. 그렇게 야생에서 나고 자란 재료를 채취하는 데만 3일이 걸렸다. 오늘은 어떤 걸 구하러 가냐는 물음에 그는 항상 ‘뭐, 일단 가보고 결정하지!’라고 답했다. 자연이 주는 대로 받아오겠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날 것 그대로였던 작업의 결은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재료 공수부터 요리는 물론, 완성된 음식을 담고 연출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전문 인력의 도움 없이 저자 홀로 해냈다. 요리 현장이 곧 촬영 현장이었던 당시 그는 특정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잠시 멈춰 자세를 취하거나 시간을 늦추는 법이 없었다. 작업 내내 어떠한 의도성을 지닌 연출을 배제한 현장이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만능간장과 레드와인 소스 레시피부터 시간이 지나도 바삭한 튀김 비결 등 지금껏 공개한 적 없던 비기를 기꺼이 내놓았다.

누군가는 다듬고 싶을 가감 없는 현장 풍경을 외려 있는 그대로 담아낸 건 이 모든 순간이 저자가 요리를 매개로 전하는 사람과 삶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접하는 영상 콘텐츠가 각광받는 시대에 요리를 지면으로 담아낸다는 건 어쩌면 꽤 무모한 일이다. 그럼에도 ‘요리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저자 임지호에 있다. 이야기가 스민 임지호의 요리는 사람의 근간을 이루는 밥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밥을 먹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일깨운다. 단순히 레시피를 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은 이 책은 때로는 한 편의 시, 혹은 수필 같은 들풀 밥상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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