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전공

새해 벽두부터 온 나라가 북새통이다. 이 논란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하면서 비롯되었다. 이낙연 대표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장수 국무총리를 역임하였고,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하면서 대통령 전용 침대는 한사코 마다하고 책상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잤던 사람이다. 꼼꼼하고 세세한 업무 방식으로 이낙연 대표의 별명이 6급 공무원을 가리키는 “이주사”이고, 또 다른 별명은 막걸리를 마시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해서 “막걸리 도지사”라고 한다. 그의 평소 품성으로 보건데, 이런 메머드급 정치 이슈를 독단적으로 내놓았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낙연 대표가 밝힌 사면 건의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두 전직 대통령의 반성과 사과가 없다는 점,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사법 판결이 아직 종결되지 않은 상태라서 논란은 더욱 거세다. 촛불 민심의 외면이라느니, 고도의 정치공작이라느니 설왕설래로 분주하다. 민주당 지지자들, 그중에서도 문 대통령 지지자들 그리고 국민의 힘 지지자들은 각자 나름의 시각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두 나라, 미국과 대한민국 헌법에는 사면권에 대한 조항이 있다. 미국 헌법 2조 2항 2절에 대통령의 사면 권한(the pardon power of the president)이 명시되어 있다. 미국 헌법은 “수정조항”(Amendment)을 통하여 기존조항을 삭제하지 않고 수정사항을 추가해 왔다. 이러한 법률적 전통을 가진 미국 헌법에서도 여전히 대통령의 사면 권한이 존재해 온 것을 보면, 삼권분립 속에서도 사면은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로서 그 존재의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헌법 제79조 1항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 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사면권을 명시하고 있다. 특별사면권은 국회의 동의 없이도 대통령이 집행할 수 있는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다. 다시 말해 사면권은 삼권분립에 있어 예외적인 정치적 행위인 것이다.

사면의 여부를 포함한 모든 정치 행위는 국민과 국가 전체의 거시적 차원에서 편익과 비용분석을 통하여, 보다 편익이 큰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면의 편익은 미래지향적 국가, 국민통합과 대화합이 될 것이다. 편익과 비용분석을 떠나, 큰 그림을 보고 정치적 이해 타산없이 국민 대통합을 위해 이낙연 대표가 새해 벽두에 던진 화두에 박수를 보낸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한 히딩크 감독이 한 말이 떠오른다. “I am still hungry.” 물론, 배가 고프다는 말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지금이 그러하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정신은 여전히 살아있고, 촛불을 든 시민들이 국정농단과 적폐세력에 대한 분노를 아직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음을 잘 안다. 이번 논란에서 국민에게 먼저 사면에 대한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과정과 절차를 거쳤으면 한층 더 좋았을테지만, 어쩌면 이번 이낙연 대표의 용기 있는 제안이 국민의 용서와 관용을 부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면은 두 전직 대통령이 일으킨 국정 혼란과 과오에 대한 진정성있는 대(對) 국민사과가 전제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이는 내면이나 본질은 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표면만을 본다는 의미이다. 이낙연 대표가 촛불정신을 몰랐을까? 우리는 촛불정신이 지닌 시대정신을 가슴에 담고 세대와 지역, 나이, 성별을 아우르는 국민 대통합의 정신을 머리 속에 담으며 더불어 나가자는 의미로 이낙연 대표가 가리키는 달을 바라봐 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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