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유가의 인정(仁政)과 덕치(德治)에 의하면 군왕은 힘이 아닌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또 군신 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을 낮추고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공자의 격언에 관측득중(寬測得衆) 관대함은 많은 사람을 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청조 건륭제는 관대함과 엄격함 둘의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청조 강희제는 지나치도록 관대했습니다. 그 결과 부정부패가 만행 실정했으며, 옹정제는 지나치게 엄격했습니다. 때문에 폭동 등 큰 사건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황제는 국민들을 편치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건륭제는 관대함과 엄격함 둘의 조화를 그리고 둘의 조화는 곧 최고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치다. 라 했습니다. 최고지도자는 간언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간언을 무시 귀를 막아 독선을 하면 잘 못된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에게는 파벌에 둘러싸여 귀가 먹고 눈이 먼 지도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엄격함을 내세워 방자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조선시대 왕실을 둘러싼 당파로 청나라와 명나라에게 무차별 짓밟히고 결국 일본이 조선 왕비를 궁내에서 무참히 살해 그것도 모자라 36년이라는 식민통치를 그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임금 한 사람 때문에 국민 모두가 그것도 그 후세대들에까지 고통을 않고 살도록 했었습니다.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또 건국 후 18대까지 열한 명 대통령 중 윤보선·최규하 대통령을 제외한 아홉 명 대통령이 불행을 겪었습니다. 임기 중 해외로 쫓겨나거나, 흉탄에 목숨을 잃거나, 감금되거나, 자식과 형제 친인척이 줄줄이 감옥을 가거나, 자살을 하거나 그랬습니다. 국민 모두가 그런 안타까운 광경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마치 대통령의 자리가 정치인의 불행한 말로로, 부끄러운 자리로, 국민들로부터 비난 받는 더 나아가 조롱거리로 됐습니다. 이제! 불행했던 과거에 종지부를 찍읍시다. 더 이상 그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합시다.

결국 그들은 지도자가 갖출 인정과 덕치를 소홀히 하고, 관대해야 할 때 관대하지 못하고, 엄격해야 할 때 엄격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러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파벌 간에 암투로 정국이 마치 진흙땅 싸움판처럼 우리 과거가 그랬습니다. 그런 가운데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으로 물질문화는 선진국에 못지않게 발달했습니다.

문제는 정신문화입니다. 이젠 우리 정신문화도 경제 수준과 물질문화에 걸맞게 달라져야 합니다. 특히 우리 정치문화 변해야 합니다. 소통하는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소통을 소홀히 하면 잘 못된 정보에 함몰 큰 실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 대국적 견지에서 화합과 협동으로 멀리 바라보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정치에서 소통은 인체의 혈관과도 같습니다. 인체에서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으면 동맥경화증 등 병이 생겨 목숨을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정치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파벌이 심화 암투와 부정부패가 만연 사회가 더 없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요즘 국민 다수가 일련의 사태를 두고 걱정들을 합니다. 최근에 조은산이라는 사람이 청와대 게시판에 시무 7조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또 다른 영남만인소라는 사람도 문재인 정부의 중요정책과 핵심인사들을 비꼬는 내용의 청원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을 보고 박수를 치는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합니다. 조은산이나 영남만인소를 꾸짖기 전에 그 청원의 글을 본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려 한 번쯤 새겨 봄이 좋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럴 땐 청조 건륭제처럼 소통은 물론 관대함과 엄격함 둘의 조화를 이룬 인정과 덕치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그것만이 난국을 극복하는 묘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날 아홉 분이 겪은 그런 불행한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간곡히 아룁니다. 그를 위해 정치문화 변해야 합니다. 이제! 불행했던 과거에 종지부를 찍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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