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무 수필가·전 김천시농업기술센터 소장
류성무 수필가·전 김천시농업기술센터 소장

귀갓길에 석양낙조(夕陽落照)를 바라보며 인생무상에서 노년무상(老年無常)으로 황혼 인생으로 황혼의 고독이 뇌를 스쳐 온몸을 감싼다. 인생을 두고 생사일여, 생사필연, 생자필멸, 회자정리라 하였거늘! 엄격히 말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매일 죽음의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인생은 아는 것이 세 가지요, 모르는 것이 세 가지인데 아는 것 세 가지는 죽는다는 것, 혼자 죽는다는 것,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고 모르는 것 세 가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는다는 것인지 모르고 산다고 한다. 또한 찰나(刹那) 인생이란 말이 있는데 순간이요, 짧은 찰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최고 문인이었던 소동파(蘇東坡)는 시문에 인생을 설니홍조(雪泥鴻爪)라고 했다. 기러기가 눈밭에 남기는 선명한 발자국이라는 뜻인데 그러나 그 자체는 눈이 녹으면 없어지고 만다. 인생의 흔적도 이런 게 아닐까? 언젠가는 기억이나 역사에 사라지는 덧없는 여로(如露)라고!

서산대사의 시문에도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태어나는 것도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음이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죽음도 구름같이 한순간에 자취가 사라지니라), 부운자본무실(浮雲自本無實·뜬구름은 본체 실체가 없으니),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태어나고 죽는 것도 아무런 흔적이 없느니라) 하였다.

길떠난 나그네들처럼 인생의 종착역이 오면 다 벗고 갈 터인데 화려했던 명예, 지위, 돈, 자랑스러운 고운 모습도 그리운 고향 부모, 형제, 친구 옆을 떠나게 된다. 황혼의 고독으로 가슴에 남는 것은 휑하니 뚫린 구멍으로 찬바람이 일 뿐이다. 한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의 주름진 미소가 옆에 있어도 외로움과 고독이 파고 든다. 생명처럼 사랑했던 아이들이 제 짝을 찾아 새 둥지를 틀어 훨훨 날아 가버리고 서로의 빈자리는 허무함이 감돈다.

필자는 태평양 전쟁 시 일제강점기에 出生하여 자랐으며 일본의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가 36년간 일제 약탈의 식민지 정책에서 벗어나 조국 광복은 되었으나 남북은 양단되고 6·25전쟁이 발발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당하게 되었다.

6·25때는 당시 17세의 나이로 소에 생필품을 싣고, 산 넘고 강을 건너 피난길에 떠났으나 인민군이 미리 앞질러 점령하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와 산으로 들로 피난 생활을 하였다.

우리 노인들은 파란만장했던 한평생을 일제의 압박과 조국의 해방과 6.25를 경험하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애국세대이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보릿고개의 가난에서도 허기진 배를 졸라매 가면서도 자녀교육에 열중한 일등 공신이었다.

필자는 농촌지도직 공무원으로 국가의 지상과제인 식량자금정책으로 무병 다수성 품종인 통일벼를 도입하였으나 열대 지방의 품종으로 우리나라 기후에 맞게 지도하기 위하여 불철주야 재배 지도에 열중하여 비로소 1974년도 4,000만석의 주곡자급을 이룩하게 한 주역으로 자부한다.

이와 같이 우리 노인들은 6·25전쟁의 참전용사이고 경제개발의 향도이며 새마을 사업의 기수이기도 하다. 번고에 허덕이는 이 나라를 세계 10위권에 경제대국으로 만들고 희생적인 자녀교육으로 자식을 일등 국민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가는세월 따라 청춘은 가고 인생마저 모두 가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빈곤, 질병, 고독, 무위고 등 사대고(四代苦)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석양낙조를 바라보는 황혼기의 노인들이고 한번은 건너야 할 큰 강이다.

거친 세파에 주름 잡힌 얼굴 파란만장했던 인생살이에 서리맞은 백발은 장한 인생의 값진 훈장이기도 하다.

늙음은 추(醜)함이 아니요.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것이요. 백발은 제왕이 정장에 갖추어 쓰는 면류관(冕旒冠)이다라고 했다.

지금은 무심한 세월의 파도에 밀려 육신은 이미 주어진 기능은 점점 퇴보되어 가고 있으며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은 하나둘씩 불귀의 객으로 떠나가고 있다. 이때에 내 차례가 다가오는 것 같은 서글픈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힘든 세월 잘 견디며 자식들 잘 길러 부모의 의무를 다하고 무거운 발걸음 이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얽매인 삶 다 풀어 놓고 잃어버렸던 내 인생 다시 남은 인생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인생 나이 80이 넘으면 이성의 벽이 허물어지고 가는 시간 가는 순서가 다 없어지니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훌쩍 떠날 적에 돈도 명예도 지위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것 없는 빈손이요. 동행해줄 사람 없으니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다 쓰고 남은 돈 있으면 자신과 배우자 위해 아낌없이 다 쓰고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인생 역정(歷程)의 시행 착오, 후회, 회한을 잠재우고 떠나야 하겠다.

끝으로 지난 이냉여정에서 뇌리에 스치는 만감이 교차하는 시름에서 고독과 소외의 터널에서 부르고 찾는 사람 없이 홀로 찾는 행동반경의 좁은 공간에서 애달픈 심정이 저무는 해는 내 몸과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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