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약일 수 있을까,

문득 작약이 눈앞에서 환하게 피다니
거짓말같이 환호작약하다니

직박구리 한 마리 날아간 허공이
일파만파 물결 일 듯
브로치 같은 작약, 아니
작약 닮은 앙다문 브로치 하나
작작 야곰야곰 피다니

팔랑,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작약은 귀를 접는다 접고 또 접는다
그리운 이름일랑 죄다 모아
저 귓속에 넣으면
세상의 발자국도 점점 멀어져
나는 더 이상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

산사에 바람이 불어
어떤 바람도 남지 않듯


<감상> 시인의 말 부리는 솜씨가 장난이 아닙니다. 작약은 작고 허약한 꽃이 아닙니다. 모란과 같이 화려하면서 도도한 느낌마저 듭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환호작약하면서 비약하는 율동이 전해옵니다. 야금야금 그리운 이름들 모아 귓속에 쟁여 넣습니다. 그리운 이름만 간직할 뿐, 떠난 사람을 부질없이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미련을 두지 않는 작약은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리는 매력 넘치는 여인과 같네요. 바람(風)이 세차게 불수록 어떤 바람(願)도 가지지 않는 도도한 여인에게 빠져들 듯합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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