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기준에 지배당하지 말고 본인의 길 걸어가야"

권재성 경상대 교수

‘과학 기술’은 국가산업 경쟁력이자 국력 원천이다.

경북일보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과학 정신’을 정립하고 기초 과학이 국부 창출 원천이 되도록 각 분야 권위 있는 과학 인재와 대담을 통해 한국 과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주인공은 경북과학고등학교 5기 졸업생인 권재성(40)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 기계시스템공학부 부교수이다.

권 교수는 2000~2007년 포스텍(포항공대) 기계공학과 학사, 2007~2009년 현대중공업 기본설계, 2009~2015년 포스텍 기계공학과 석·박사, 2015~2016년 마이다스아이티 CFD개발팀을 거쳤다. 이어 경상대 기계시스템공학과에 2016년 9월 조교수로 부임해 2020년 9월 부교수로 승진했다.

다음은 권 교수와 1문 1답이다.
 

제주도에서 찍은 권재성 교수 가족 사진

△경북 또는 포항과의 인연은.

-포항에서 태어나 양학초, 용흥중, 경북과학고를 거쳐 포스텍 기계공학과에서 학,석, 박사과정을 마쳤다. 중학교를 졸업하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 3년의 암흑기를 거쳐 대학부터 박사학위를 받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포항에서 마쳤는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현대중공업에서의 경험이 제일 큰 전환점이었다. 고교 시절을 암흑기로 표현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웃사이더가 되어본 경험 때문인데,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혹시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면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살다 보면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가 있는데 세상이 넓다는 것을 어렸을 때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면 그만한 공부도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사 세상사 ‘새옹지마’이고,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그저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일 뿐이니 현재를 즐기길 바란다.

△교수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교수의 꿈을 꾼 것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꿈이 없었고 인생의 방향성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진학도 내 선택이 아니었고 포스텍에 진학한 것도 내 의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당시에는 참으로 많은 원망을 했었다. 교수가 된 것도 사실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의 권유 때문이었는데, 나를 가까이서 오랜 기간 지켜보며 조언을 해주신 유일한 분이었기에 대학원 시절에는 그렇게도 말썽을 부렸지만 졸업 후에도 잊지 않고 먼저 연락을 주신 교수님의 도움으로 오늘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듯이 제자가 어찌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겠는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거창한 답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여기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람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걱정하지 말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너무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대학원생과 연구 분야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는 모습.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설명과 특별한 연구 성과, 성취가 있다면.

-제 전공은 난류 연소(turbulent combustion) 분야의 수치해석 모델링이다. 짧게 쓰고 싶지만 국내에서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분들이 줄어드는 추세라 여기에서라도 잠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유체는 그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난류 유동이 형성된 영역에서 연소라는 화학 반응이 일어났을 때의 진행 과정과 배기 특성 등에 대한 물리적 이해를 하기 위해 수치적 방법, 즉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실험적으로는 구현이 어렵거나 공학적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 상황에 대해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현재의 컴퓨터 성능의 한계로 인해 이론적인 모든 것을 시도해볼 수는 없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난류 유동과 화학 반응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물리화학적 현상을 이해한 뒤 좋은 모델을 만들고 이를 응용 연소기(내연기관, 가스터빈 연소기 등)의 설계 및 개발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연구이다. 이를 위해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극도로 꺼려 했던 프로그래밍을 공부해야 했으며 박사학위 주제는 하필이면 기존의 주류 개념과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여 논문이 출판되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다. 소기의 성과라면 새로운 개념을 적용해 어떤 결과를 도출해보았다는 것인데, 연구를 시작할 때 난류라는 주제가 뭔가 어려운 개념이니 한 번 도전해보자는 순진한 마음이었고 그런 가벼운 의사결정으로 졸업하는 날까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반복했었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학위과정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좌절의 연속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던진 숙제 중 대학에 던진 화두는.

-코로나19 때문에 우리 대학은 지난 1년을 비대면 학기로 운영했는데, 과목 특성에 따라 장단점이 있겠지만 내가 지도한 교과목의 경우 학생들은 비대면수업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으로 여러가지 변화가 예상되는데, 대학의 생존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고 그것이 교육의 상향평준화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의 변화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지식의 전달 측면에서 대학의 기능이 기존과는 달라질 것이고 수요자인 학생들의 요구도 달라질 것인데, 단순히 지식 전달을 위해서라면 대학의 역할이 축소될 수도 있겠지만 강의실에서의 문답을 통한 학생들의 사고력 훈련과 실습을 통한 교육 등 여전히 대학만이 담당할 수 있는 고유영역이 있고, 연구 기능 강화를 통한 사회적 기여 등 생각하기에 따라 충분히 변화에 대응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포스트 코로나, 대학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국내 상황에 한정해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후 대학의 미래는 코로나라는 감염병에 의한 변화보다는 학령인구 감소에 의한 변화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대학 정원이 고등학생 수보다 많아지는 상황에서 대학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여기서 국가적 차원에서의 타협이 가능할 것인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지방대의 경우 그 어려움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1년 신입생 선발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매를 먼저 맞는다는 개념으로 좀 더 일찍 변화를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AI 등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본인 전공분야에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위기인지, 기회인지.

-AI, 빅데이터 등은 너무나 중요한 기술인데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여기서 도태되면 우울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사례로 자율주행차를 살펴보자. 자율주행차 개발에서 선두업체는 단연 미국의 테슬라이며 최근 애플이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에서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이용한 새로운 모델들이 출시될 예정인데, 여기서 생각할 점은 자율주행차의 운영체제를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국산 모델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율주행 레벨에서 생각하면 테슬라 대비 걸음마 수준이 아닌가 싶은데, 최근 테슬라의 미래비전이라 불리는 스타링크 사업을 보면 불안감이 생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컴퓨터를 만드는 업체는 많지만 운영체제 공급은 소수의 회사가 과점하고 있지 않는가? 결국 소프트웨어 분야의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생산거점 이상의 역할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국제 경쟁에서 우리의 파이는 줄어들게 될 것이고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 밖에 없는 나라에서 그 이후에는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제조업 인프라가 잘 갖춰진 우리 나라에서는 순혈주의를 버리고 대표 기업들 간의 협력을 통해 미래 먹거리 확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포항에는 해양과학고가 있다. 3D 업종 기피로 해양 인재가 갈수록 고갈될 추세로 전망되는데. 어떻게 해야 건강한 해양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인재 확보를 위해서는 경제적 유인을 주는 것이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보상이 낮은 분야가 경쟁력을 잃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획기적 지원책이 있어야 할 텐데 민간산업분야는 결국 시장논리로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저임금 직종에서는 이민 정책 또는 생태계 유지를 위한 지원책을 고려해야 할 텐데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께서 좋은 정책을 만들어주시기 바란다.

△지금의 일을 계속 하면서 이루고 싶은 결과물, 업적 꿈이 있다면.

-연구 업적에는 집착하지 않는 편이다. 집착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결과 위주의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행을 따라가는 연구보다는 현재의 분야에서 더 높은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사람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게 말이다. 물론 승진 등의 현실적 문제 때문에 업적을 위한 연구도 하긴 해야 하겠지만,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내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싶고 관심 분야에 매진하다 보면 따라오는 것이 결과가 아닐까 싶다. 교수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 다양하겠지만 고령화 등 갈수록 어려워지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할 때 유능한 후배들을 길러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경상대 기계시스템공학과 학생들 견학 사진

△ 포항과 경북에는 포스텍 등 풍부한 R&D 인프라가 있다 어떻게 잘 활용해야 과학 기술을 더 꽃 피울 수 있을까.

-R&D라는 게 결국은 사업화가 핵심이 아닐까 싶은데, 포항이라는 곳이 철강도시이다 보니 주변에 다양한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 기술 활용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기업들과의 교류 활성화 및 공동 연구과제 발굴을 위한 전공 분야별 매칭이 필요하고, 이를 대학에서 자체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이를 코디네이팅할 수 있는 전담기구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수한 인프라일 수 있어도 활용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인프라의 유용성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초과학, 그리고 응용과학에서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하려면.

-‘무조건적인 지원’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정부서 지원하는 연구과제는 평가를 받아 야하는 숙명에 처해 있다 보니 고위험연구를 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단계별 평가에서 탈락하면 연구를 지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패해도 좋으니 우리만의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를 꿈꾸는 과학고 등 이공계 후배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앞서 이야기했듯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혹시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면 현재에 집중하기 바란다. 여러분들에게는 무한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적성과 진로 등에 고민이 있다면 이 또한 본인이 잘 판단해야 하기에 수학·과학과 같은 전공 공부에만 시간을 투입하기보다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거나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거나 선배들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해 먼저 경험한 선배 조언을 얻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내 경험을 돌이켜봐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입시 공부 외에 특별한 활동을 한 게 없는데, 이것이 방향성을 조기에 설정하지 못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를 전공할 것인지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느 정도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고, 무엇을 위해 과학고 또는 이공계를 선택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경상대 기계시스템공학과 학생들 견학 사진

△공무원이 대세인 시대, 안정적인 직장에 모두 매몰되고 있다. 맞는 현상일까.

-시시비비를 가릴 주제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이고,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젊은이들의 비전 또한 어둡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하면 꿈이 이루어질 것이니 도전하라고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고, 현실을 직시해 이에 대해 본인의 생존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조기에 도와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왜 젊은이들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호하는지를 이해한다면 이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며, 기성 세대들이 미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없다면 후배들에게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만 하지 말고 같이 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렵고 민감한 문제인 만큼 모두가 마음과 뜻을 모으면 좋겠다.

△삶에 대한 조언이나 지혜, 자신이 가진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다면.

-어릴 때는 좌우명을 써 놓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사실 지금까지 내 기준을 가지고 지속한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들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는데, 거창한 철학이나 가치관 같은 것은 없고 우리 후배나 아이들이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고 그것을 위한 디딤돌을 마련해주는 것이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독자나 후배, 젊은이들에게 혹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

-어릴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이끌어주시는 대로 공부하는 게 전부였지만, 어른이 돼 내게 주어진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선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똑똑하다는 소릴 듣고 좋은 학교를 다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성인이 된 이후의 선택에서 내가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결정한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고, 무엇인가를 결정한 이후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배웠는지 왜 이런 것도 몰랐던 것인지에 대한 자책도 많이 하며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바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나 교육체계에서 과연 본인만의 개성을 찾아서 그것을 발전시켜 가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후배들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는 습관을 기르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남의 기준에 지배당하지 말고 본인만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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