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들판을 가로지르며 길이 묻혀 있다.
두더지 자국처럼 꾸불꾸불 한참 가고 있다.
동구 밖의 등 굽은 홰나무 밑을 지나면서
까치집 한번 올려다보고
더 춥다
저무는 길 끝 쇠죽여물 끓는 냄새가 난다.


<감상> 눈이 오면 들길은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다. 두더지가 지나간 자국처럼 논두렁은 더 부풀어 오른다. 회화나무 가지에 놓인 까치집은 얼마나 추울까. 그런데 까치집 안은 몸 비비는 소리와 온기가 담겨 있다. 해가 저물어도 눈 덮인 들길은 집으로 향해 있다. 세상의 모든 길은 집으로 걸어간다. 쇠죽여물 끓는 냄새가 내 발을 잡아당긴다. 희한하게 차가운 눈은 집을 포근히 감싸고 열기를 불어넣는다. 군불 지펴진 구들목이 우리에게 눈처럼 순수한 추억들을 덥혀준다. 우리는 추억에 생기를 불어넣는 눈에다 첫줄을 새기고 싶은 거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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