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군자방미연(君子防未然)이니 불처혐의간(不處嫌疑間)이라.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 수숙불친수(嫂叔不親授)요 장유불비견(長幼不比肩)이라. 노겸득기병(勞謙得其柄)이나 화광심독난(和光甚獨難)이라.

당나라 시인 섭이중의 시 군자행의 일부이다. 군자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때문에 혐의를 받을 처세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참외 밭을 지날 때는 신발을 고쳐 신지 아니하고 오야나무 밑을 지날 때는 갓을 바루어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고를 발생시켜 놓고 수습하는 것이 제일감이 아니라 사고를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많은 분들이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이라는 교훈을 잊고 살아오다가 발탁되고 난 뒤 반성하고 정리하겠다고 약속하는 예를 자주 본다. 군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않은 분들이 고위공직자로 추천되고 선임되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까워진다. 청문회 때마다 불거지는 비리나 모순은 그만큼 올바른 인재가 드물다는 뜻도 되리라. 하기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라고. 하지만 군자행을 망각한 탓이리라. 전 현직 법무부 장관도 송사에 휘말리고 검찰총장까지 징계 논란에 휘말리는 상황을 보면서 섭이중의 군자행을 다시 생각해 볼 밖에.

건곤일척(乾坤一擲)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흥망을 걸고 전력을 다하여 마지막으로 한판승부를 겨룬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을 걸고, 다시 말해 운명을 걸고 한 번 던져 본다는 뜻. 당(唐)대의 문장가 한유(韓愈)가 지은 ‘과홍구(過鴻溝)’라는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나오는 말이다. “용은 지치고 범은 피곤하여 천하를 둘로 나누니 천하 백성들의 목숨이 보존되었구나. 누가 군왕에게 말머리를 돌리도록 권하여 진정 건곤일척의 성패를 겨루게 하였던가”. 항우와 유방이 홍구를 경계로 휴전하기로 하였는데 유방의 참모 장량과 진평이 “한나라는 천하의 절반을 차지했고, 제후들도 따르고 있습니다. 초나라 군사들은 몹시 지쳤고 군량마저 바닥입니다. 초나라를 멸할 수 있는 기회이니 지금 쳐부수어야 합니다”라고 간하여 말머리를 돌려 건곤일척 한판 싸움을 벌였고, 유방이 승리하여 천하가 한나라로 통일되었다.

지난 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싸움. 건곤일척이란 말이 생각났다. 대판 싸움. 검찰총장이 온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할 만큼의 잘못을 한 것 같지도 않고,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쫓아내야 하는 사명감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는지 모르겠다. 유방의 참모 장량도 결국은 팽 당했는데. 군자의 노래 속에 화광심독난(和光甚獨難)이란 구절이 있다. 드러내지 않는 것이 유독 어렵다는 뜻이다. 잘난 사람끼리 만났으니 소리가 요란했는가.

검찰개혁이 꼭 필요하고 고위공직자 비리를 효과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공수처가 필요하다. 이미 출범 단계에 왔다. 정권에 눈치를 보거나 호가호위하는 고위 공직자를 조사하여 처벌하는 것은 백만 번 옳은 일이다. 늘 현 정권에서의 비리 수사가 문제다. 현 정권이 현 정권하의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철저히 막겠다고 공수처를 출범시켜 앞장서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역으로 현 정권하의 비리를 덮으려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법을 필요에 따라, 입맛에 따라 개정하여 적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아무튼 신년에는 지도자급 인사들이 군자행(군자의 노래)을 곱씹어 의심받는 일 없이 반듯하게 처신했으면 좋겠고, 좀 똑똑해도 잘난 체 너무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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