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예년 같으면 이맘때는 신년교례회나 인사모임 등으로 연회장과 식당들이 사람들로 붐빈다. 이런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덕담들이 오간다. 올해는 코로나로 이런 모습들은 볼 수가 없다. 신년 덕담은 비대면에 즉시성을 갖춘 스마트폰 SNS가 대신한다. 여전히 전화를 걸어 덕담을 주고받는 이들도 있지만 SNS에 비교하면 극소수다. 연하장이나 카드는 몇 년 사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새해 덕담은 대부분 건강과 행운을 비는 것들이다. ‘새해 복 많이 받기를 빈다’거나 ‘건강에 더 많은 신경을 쓰라’는 말들이다. 아니면 ‘하는 일마다 잘 되길 빈다’거나 ‘늘 행운이 함께 하라’는 것들이다. 요즘은 SNS에서 떠도는 좋은 글이나 문구, 사진들은 너도나도 바로 퍼 옮기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똑 같은 것들이 오고 가기도 한다.

편리한 세상이 되다 보니 문자로 오가는 덕담들이 너무 천편일률적이어서 때론 식상함이 없지도 않지만 그래도 새해를 맞아 잊지 않고 보내주는 덕담은 누구에게나 고맙기가 그지없다. 신년 덕담은 예로부터 한해의 시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세시풍속이었다. 새해를 맞아 아는 사람에게 합격과 승진, 득남득녀 등 원하는 것들을 말로써 빌어주면 그것이 실제로 이뤄진다고 믿었다. 말의 신비한 힘을 믿는 언령관념(言靈觀念)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는 가장 궁금하고도 두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미래다. 미래는 인간에게 언제나 불확실한 존재였고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오늘과 내일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하루 이틀의 앞날도 알기 어려운데 한 해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앞날의 불안들을 떨치기 위해 너도나도 덕담의 힘을 빌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청참(聽讖)이라는 세시풍속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새해 첫날 짐승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다. 설날 아침에 집 근처를 발길 가는 대로 가다가 날짐승이나 길짐승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첫날 듣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따라 자신에게 펼쳐질 한해의 운을 예측했다. 일종의 점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해가 열리는 날 짐승 소리를 통해 역시 앞날을 미리 알아보려는 마음이었다. 설날 아침 맨 처음 들은 까치 소리는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있을 길조로 여겼고, 까마귀 소리는 안 좋은 일이 있을 흉조로 해석했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은 일부러 까치 소리를 들으려고 까치가 많이 사는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이렇듯 미래는 불확실하고 궁금한 것이어서 새해가 되면 너도나도 덕담으로 한해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위안하려고 했던 것이다.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모든 것들이 예측 가능해졌다고는 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불확실성은 지금이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한지도 모른다.

새해가 시작됐지만 인사모임조차 못하는 요즘이다. 특히, 비대면과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모두가 겪는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주변에 덕담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정작 덕담이 필요한 곳은 우리들 자신 아닐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1년 동안 묵묵히 이겨내고 버티어낸 우리다. 다가올 날들을 감당해내야 할 사람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나만의 특별한 신년 덕담을 자신에게 건네 보면 어떨까. ‘새해도 흔들림 없이 나를 믿고 지킬 것’이라고. 또,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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