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꺼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
한다. 마음에 없는 말일 수 있다. 인스턴트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단치 않는 깊이에도 빠질 수 있다
고 경고해 준다. 모두 얕다. 기실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단찮은 깊이까지 사랑한다 해도, 커피는 어두워 바닥을 보
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실 어둠의 깊이를 얕볼
수 없다. 싸고 만만한 커피지만, 내 손이 받쳐 든 보이지 않는
그 깊이를 은밀하게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걸 누가 쉬이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감상> 모든 사물은 저마다 어둠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사물의 속내를 탐구하지 않는 이에게는 모든 게 대수롭지 않다. 그러니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해 거품을 걷어낸다는 시인의 말이 얕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아직 말을 거는 이도, 시를 쓰는 시인도 모두 얕다. 사물의 깊이를 웅숭깊고 은밀하게 들여다보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사물에게 말 걸기를 얼마나 시도해야 시인에게 답을 건네줄 것인가. 시인은 시로 그 깊이를 풀어내지만, 시를 읽는 독자들은 얕게 보지 말자.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자.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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