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수 대구본부 취재부장.

대구 남구 대명9동에 가면 봉준호 영화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가 있다. 울산에 사는 누군가가 샀다. 지난해 2월 10일 봉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을 수상하자 생가가 유명해졌다. 남구청이 이 생가를 사들이려 했지만, 봉 감독 수상 이후 집 주인이 매매를 거부했다.

남구청은 봉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봉덕동과 대명동 일대에서 흔적을 찾아내 스토리텔링 하고, 콘텐츠가 부족한 앞산 카페거리에 봉 감독과 그의 영화 이야기를 입힐 작정이었다. 삼각지 로터리 인근에 있는 대덕시장에는 영상콘텐츠 개발이 가능한 지식산업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세계적 영화 거장이 탄생한 곳에서 제2, 제3의 봉준호를 배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21대 총선 예비후보자들도 봉 감독 동상 건립과 생가터 복원, 박물관 건립 등의 공약을 쏟아냈다.

오스카상 수상 9일 만에 사정이 달라졌다. 봉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저희가 죽은 후에 해달라”고 잘라 말했다. 남구청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생가 앞에 팻말 하나 못 남겼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지시한 ‘대구의 아들 봉준호’ 알리기도 곧바로 멈췄다. 대구시 관계자는 “봉 감독 전화번호조차 구하지 못해 접촉 자체를 못했다”며 “봉 감독이 살아생전에는 거리 조성 등을 거부한 이후 ‘뻘줌’ 해진 셈”이라며 멋쩍어했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남구청은 미련을 못 버렸다. 앞산 카페거리 공영주차장 벽면에 영화감독을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카메라, 슬레이트와 같은 도구가 새겨진 벽화를 곧 설치한다. 기생충 영화와 관련한 어떤 것도 담지 못했다. 봉 감독의 허락이 없어서 그를 연상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대구시와 남구는 ‘대구의 아들’ 봉준호를 외치지 못하고 있다. ‘뻘줌’한 상태로 입맛만 다시는 모습이 가엽기만 하다.
 

배준수 대구본부 취재부장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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