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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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인간 영혼의 선견자 도스토옙스키(1821~1881년) 소설 ‘죄와 벌’(1867년 출간)의 시작 부분이다. ‘죄와 벌’은 ‘자유를 위해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있나’라는 명제를 실증하는 실험극 같은 소설이다.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선택된 강자가 공리(公利)를 위해 사회의 도덕률은 넘어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蝨)처럼 피를 빠는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여 어려운 학생들을 도울 수 있다면 살인도 용납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소설 속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를 죽이고, 마침 전당포를 찾아 온 노파의 백치 동생 리자베타도 죽인다.

러시아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를 ‘성스러운 바보(Holy Fool)’라 해서 겸손과 수난의 상징으로 여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의도치 않은 순간 노파와는 정 반대의 성스러운 존재 노파의 동생까지 죽이는 이중살인을 저지른다. 다수의 행복을 위한다는 산술적 공리주의에 사로잡힌 라스콜리니코프는 막상 살인을 저지른 이후에 헤어날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결국 그는 자유도 정의도 실현하지 못한 채 체포된다.

법무부가 2019년 3월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출국금지’ 과정에 가짜 서류를 만들어 불법적으로 체포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사법 시스템을 무시하고 서류를 조작해 피의자가 아닌 개인을 출금시킨 것이다. 법무부는 “당시 상황이 불가피 했다”고 해명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공리를 위한 살인’ 같은 해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검·경이 명운 걸고 진상 조사하라”는 한마디에 ‘법무부(法務部)’가 ‘법무부(法無部)’가 됐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성상 조각의 상징인 도끼로 살인을 저지르듯 국민을 위해야 하는 권력을 휘둘러 정의의 법치를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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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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