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법원
A씨는 피보험자를 아버지로 해서 2014년 6월 2일부터 2029년 6월 2일까지를 계약 기간으로 하는 화재저축보험에 가입했다. 건물 화재손해에 대해서는 1억 원, 가재도구 화재손해에 대해서는 3000만 원을 보상하는 내용과 함께 계약자, 피보험자 또는 이들의 법정대리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손해를 보상하지 않는다는 보험회사 면책조항도 담았다.

A씨 아버지 B씨는 2018년 3월 5일 오전 11시 10분께 자신의 집 안방과 작은방 이불에 휴지를 올려놓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고, 주택 1층 전체로 불이 번졌다.

A씨는 2019년 4월 4일 아버지가 숨지자 보험사를 상대로 건물 손해액 2700여만 원과 가재도구 손해액 2700여만 원 등 55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B씨가 상세불명의 치매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일으킨 화재로서 일반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사고와 같다고 볼 수 없어서 면책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구지법 제11민사단독 김경대 부장판사는 “B씨는 고의로 화재의 결과를 발생하게 했고,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화재 사고로 인한 손해는 면책조항에서 정한 보험금 지급 면책 사유에 해당한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B씨의 정신질환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어서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는데, 재판부는 그렇지 않다고 본 것이다.

B씨는 2016년 1월 19일 한 대학병원에서 부인에 대한 망상으로 공격적 행동을 자주 보이고, 알코올성 치매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의 저하가 심해 일상생활의 장애가 자주 나타나는 상황이어서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2018년 5월 14일 다른 정신병원에서도 상세불명의 치매로서 인지력 저하와 배우자에 대한 의심 망상, 현실판단력 상실로 인한 공격적인 행동 등의 증상을 보여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2018년 5월 16일 다시 대학병원 신경심리검사에서 중기치매 단계(전반적 퇴화척도 6단계)로서 망상적 행동, 강박적 증상, 난폭한 행동, 인지적 인지 상실증 등의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재판부는 B씨가 사건 당시에 변별력이 전혀 없다고 보기 힘들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의학적 소견이 나온 점을 주목했다. B씨는 방화 후 직접 119에 신고한 뒤 경찰에서 잘못했다고 말했고, 아침밥을 혼자 먹으려다가 갑자기 화가 나 이불에 휴지를 올려놓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고 겁만 주려고 했는데 번져버렸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사고와 가장 가까운 날짜인 2018년 4월 30일 검사에서 심한 치매 단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검사 결과도 참고했다. 재판부는 또 B씨가 이불에 휴지를 모아 불을 붙이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전반적 퇴화척도 6단계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행동문제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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