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야기] 18. 청도군 각북면 오리마을
[우리동네 이야기] 18. 청도군 각북면 오리마을
  • 장재기 기자
  • 승인 2021년 01월 17일 21시 15분
  • 지면게재일 2021년 01월 18일 월요일
  • 13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상의 생활상 담긴 마을 이름, 후손에 고스란히 전할 것
오산2리 마을전경
청도지역은 산은 높고 깊어 봉우리와 골짜기마다 특별한 이름이 있다. 이 이름이 지금까지 불리게 된 과정에는 여러 가지 독특한 기연(機緣)을 가지고 있다.

최근 청도군 각북면 ‘헐티로’로 변경된 오산리는 오이(梧耳)·고산(高山)·삼청(三淸)·비지리(飛地里)가 합쳐져 이룩된 동네 이름이다.

대구 가창에서 헐티재를 넘어서면 용천사 입구가 나온다.
△헐티재를 지나가는 길 ‘헐티로’.

오산리는 각북면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혈티령 중턱에 위치해 덕촌에서 오산리를 바라보면 ‘반공유인가(半空有人家)’의 표현이 절로 실감이 난다.
비슬산 앞산 능선에 위치한 용천사
이 마을로 가는 길옆에 200여 년 전에 세워진 용천사(湧泉寺)와 천연기념물 털왕버들이 있다. 여기에 용천사까지의 길을 촉도(蜀道)의 험난함에 비유해 ‘바위투성이 길’이라 했다.

고산(高山)리에는 진주인 유창근 공이 1300년경에 입주했다는 설과 고 씨 3가구가 먼저 입주했다는 두 가지 설(說)이 있다.

오이리(梧耳里)는 1500년경에 현풍인 곽계철 공이 현풍에서 이거 했다는 것이다. 삼천리(三泉里 또는 삼청리 (三淸里))에는 철성 이씨가 약 100여 년 뒤에 입주했다는 것이다.

오리(梧里)·오이(梧耳)는 ‘옛날부터 오동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지금도 오동나무가 많다.

산촌 중에서 산촌인데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마을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산리가 태산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이면서 비교적 오래된 것은 식수와 농사 용수가 풍부한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한가지는 용천사의 사전(寺田) 등으로 인해 농토 경작이 가능 한데서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경지가 심한 계단식이나 용수가 풍부해 보의 구실을 톡톡히 하는 곳이다.

최근 ‘오산리(梧山里)’는 각북면 ‘헐티로’로 바뀌었고, 그러한 도로명의 부여사유는 ‘헐티재를 지나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마을뒷산 봉황이 양날개를펴고있는 형상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

청도군 각북면 오산2리 마을은 오리(梧里) 또는 오이(梧耳)라 불리고 있다.

이 마을은 오동나무 오(梧)자를 붙여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그 이유는 예부터 오동나무가 많이 있다 해 붙여진 이름뿐 아니라 풍수와의 상관성도 내포돼 있다.

바로 풍수 형국론(形局論)의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에서 비롯됐다.

오리마을 뒷산에 한 마리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봉황의 모습은 헐티재를 올라가는 도로가 양쪽 날개를 횡단해 가로지르고 있다. 봉황의 날개 끝 지점에는 농업용수로 만들어진 작은 못이 있다. 그 이름 역시 봉황을 상징하는 ‘봉황지(鳳凰池)’이다.

이 모두가 봉황이 깃드는 터의 상징성을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오산1리가 내려다 보이는 전경
오리 주변에는 예전에 오동나무와 대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깃들고, 죽실(竹實)을 먹고 산다는 전통적인 관념으로 인해 마을 주변에 많이 심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볼 때 오동나무 숲과 대나무 숲이 많은 오리마을은 봉황이 깃든 터의 형국과 썩 잘 어울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봉황새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鳳凰非梧桐不棲)’는 생각에서, 그리고 ‘봉황은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鳳凰非竹實不食)’는 데서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봉황과 관련된 터의 특성에 맞춰 그 지역 주변에는 봉황과 관련되거나 오동나무, 대나무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풍수적인 지리환경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풍수 사상이 ‘봉황지’, ‘오리’, ‘오이’의 이름을 낳았다.

양윤석 풍수지리학자는 “여기에는 온갖 전설과 역사, 풍속, 문화 등의 향기가 서려 있고 그 지방의 독특한 자연경관 및 생활 풍습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는 조상이 과거 문화 발달의 자취를 잘 남겨 놓은 귀중한 역사적 문화유산이다”고 말했다.

마을노인회관
△조상 생활상 그대로 담은 지명.

각북면 오산리의 조상들은 자신들이 기대어 살던 산세를 봉황으로 해석했다. 봉황은 희대의 영물 서러운 새이기 때문에 봉황이 머무르는 곳에 살게 되면, 그 터에는 군자와 성인이 나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의 힘든 삶 속에서도 이러한 지형 속에는 언제 가는 산의 형세가 소응(昭應)해 후손들 중 성인군자가 배출될 것이라는 희망과 꿈을 갖고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조상들의 소박한 생활상이 그대로 담겨 있는 지명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조상들이 남긴 지명은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야 한다.
마을 뒤로 헐티재가 보이는 오산리 전원주택이 즐비하다
오산리는 현재 272세대 423명이 살고 있다.

용천사는 맑고 풍부한 석간 수가 사계절 관광객이 많다. 대구시 주민들이 헐티재를 자주 넘어와 맛집을 즐겨 찾는 바람에 식당, 찻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많아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의 발길이 잦다.
다양한 음식의 맛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양윤석 풍수지리학자는 “비록 지명의 의미가 담겨있는 지번 주소가 사라지고 있지만, 각 지명들이 갖고 있는 기연들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각 마을이 가진 독특한 지명의 유래는 그 마을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재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장재기 기자
장재기 기자 jjk@kyongbuk.com

청도담당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