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은 꽃이 만발했을 때 갈아엎는다
붉은 꽃이며 푸른 잎 싹쓸이하여 땅에 묻는다
저걸 어쩌나 저걸 어쩌나 당신은 탄식하여도
그건 농부의 야만이 아니라 꽃의 자비다
꽃피워 꿀벌에게 모두 공양하고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자운영은 땅에 묻혀
땅의 향기롭고 부드러운 연인이 된다
그래서 자운영 녹비라고 부른다는 것
나는 은현리 농부에게서 배웠다, 녹비
나는 아름다운 말 하나를 꽃에게 배웠다
그 땅 위에 지금 푸른 벼가 자라고 있다


<감상> 봄 들판에 붉고도 흰 자운영은 만발하는 순간, 쟁기를 불러들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 땅에 묻혀 흙의 연인이 됩니다. 흙 속으로 묻히면서 향기마저 가져가는 자운영, 꽃의 소신공양입니다. 경운기 소리를 받아들이고, 꿀벌과 나비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고, 끝내 벼의 거름이 되어주는 푸른 거름. 이 아름다운 말은 떠날 때를 알고 자신을 비우는 꽃에만 부여됩니다.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여 끝까지 추태를 부리는 인간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앉았던 자리를 떠나서도 위세를 부리는 인간들은 얼마나 추잡스러운가. 꽃에게 녹비를 배울 일이다. 자운영은 몸을 공양하고도 영원히 그 자리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지 않는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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