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 칼럼니스트
김동완 칼럼니스트

크로스비(Crosby)는 영국 머지사이드주에 있는 인구 5만의 해안도시다. 이 작은 도시에는 127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팀 ‘머린AFC’가 있다. 잉글랜드 축구 8부리그에서 경기를 펼치는 동네축구팀이다. 주장 나이얼 커민스는 교사, 미드필더 제임스 배리건은 환경미화원, 공격수 닐 캥니는 배관공이다. 최근 머린의 연고지인 크로스비에서 난리가 났다. 지난 11일 열렸던 머린의 FA컵 64강 상대가 손흥민의 토트넘이었기 때문이다. 경기는 5-0으로 토트넘이 이겼지만 마린은 이날 경기에서 기적을 낳았다. 3만 명이 넘는 팬들이 이날 경기의 가상 티켓을 구입해 5억 원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 해고 위기에 있던 선수들이 살아났다. 축구를 사랑하는 ‘개미군단’이 팀을 위기에서 살린 것이다.

칼레는 인구 7만 명 남짓한 프랑스의 작은 도시다. 백년전쟁 때 칼레를 점령한 영국군에 대항하기 위해 교수형을 자처한 6명의 의로운 시민이 나온 곳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칼레의 시민들’이라고 부른다. 칼레는 한 때 축구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1995·96 시즌 ‘쿠프 드 프랑스’ 당시 칼레축구팀도 ‘동네축구’ 수준이었다. 주장은 슈퍼마켓 사장, 공격수는 대형 할인매장 카르푸 직원이었다. 쟁쟁한 프로 1부리그 팀들을 차례로 깨고 결승에 올라 준우승했다. ‘칼레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K3리그 경주시민축구단이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경주시의회가 경주시민축구단 예산 7억여 원을 전액 삭감했다. 주낙영 경주시장도 축구팀 존속에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축구팀이 시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꼴찌해서 스트레스를 줘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일부 육상종목은 세계대회에서 성적이 일관되게 바닥권이다. 주 시장 말대로라면 육상에 투자하는 대한민국 체육계는 바보라는 말인가. 축구단 해체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영국의 머린AFC와 프랑스의 칼레처럼 시민의 힘으로 축구단을 살려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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