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여보게, 세상 모든 것 놓고
훌쩍 사라지고 싶은 어느 겨울 있걸랑
강원도 미시령 지나
바람 거세게 부는 용대리쯤 머물러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공기로 심호흡하고
살아오며 추억 몇 개 떨어뜨려
까마득하게 잊은 기억 되살려주는
덕장에 매달린 황태 바라보게나
죽어서도 하늘 향해 비상을 꿈꾸며
꼬리지느러미 흔드는 건조한 황태
세상 살아 움직인다는 게
이 얼마나 푸른 감동의 울림인가
여보게, 세상 힘들어 잠시 눈감고 싶을 때
나란히 줄서서 하늘로 비상하는
황태 덕장 앞에 서서
무심히 고개 들어 하늘을 보게, 파란


<감상> 삶이 갑갑할 때 바다를 떠나 허공을 집으로 삼은 황태를 보러 가자. 황태는 죽은 입으로도 공중을 향해 울부짖고 비상을 꿈꾸지 않는가. 바다에서 품었던 꿈을 후생까지 끌고 가는 힘을 갖고 있지 않는가. 사지가 멀쩡히 움직인다는 게 얼마나 감동의 리듬이고, 푸르른 울림인지 느껴보자. 비록 몸은 바싹 말라가지만, 세상의 딱딱한 말들이 황태의 입을 거쳐 나오면 말랑말랑해질 것 같다. 황태는 먼저 가슴부터 활짝 열어젖혀 보이기 때문이다. 황태의 가슴 속으로, 벌어진 입속으로 하늘을 쳐다보자. 그러면 서늘한 파랑이 몰려온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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