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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다시는 우리 아이들을 잃지 않기 위하여
[진료실에서] 다시는 우리 아이들을 잃지 않기 위하여
  • 조우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1년 01월 20일 16시 32분
  • 지면게재일 2021년 01월 21일 목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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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포항시 아동복지심의위원회 위원).
조우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포항시 아동복지심의위원회 위원).

과거의 일이다. 당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한참 자신감이 올라 어떤 환자와 면담을 해도 소기의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자만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아이를 잃은 한 여성을 우연히 만났다. 전남편과 이혼 후 아이를 제대로 만날 수 없었지만, 늘 그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열심히 삶을 살아가던 분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재혼 가정 내에서 발생한 학대와 폭력에 의해 싸늘한 주검이 되었고, 친모의 가슴에는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뚫렸다. 이 절절한 슬픔 앞에서 나는 그 어떤 말도 쉽게 할 수 없었고, 그동안 배워온 면담 기술도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저 그 슬픔을 쉽게 이해하는 척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질 거라는 뻔한 말도 하지 않고, 마음의 손을 맞잡은 채 가만히 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후 아동학대 사망 때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고, 현장에서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소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20년 여행용 가방 안에서 숨진 ‘천안 계모 아동학대 사건’, 소녀가 부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건물 지붕을 타고 탈출한 ‘창녕 아동학대사건’의 절망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16개월의 작디 작은 정인이를 우리는 또 잃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로서 하루 수십 명의 마음 아픈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와 그 부모들을 만나며 늘 느끼는 점은 애착과 학대가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 부모들이 무력한 아이였을 때, 현재 그들의 아이가 경험하는 아픔을 유사하게 겪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 사회의 키워드가 금수저, 흙수저가 된 지 한참이 지났다. 부모에게 받은 경제적 유산이 많음을 부러워하고, 나는 내 자녀에게 얼마나 물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우울해진다. 어느 영화의 대사 “뭣이 중헌디”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기를 쓰고 물려줘야 할 것은 경제적 유산이 아니라, 따뜻한 애착을 바탕으로 한 정신적 유산일 것이다.

치명적인 신체적 학대가 꼭 아니더라도, 따뜻한 돌봄을 기대한 대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누적됐을 때 아이들은 애착손상을 입게 된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기대되는 “있어야” 할 경험(따뜻한 애착과 돌봄)이 모자란 경우, 즉 애착손상이 지속될 경우에는 “발달 트라우마”로 연결된다. 이러한 아이들은 몸이 다 자라고 난 뒤에도 자신 안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우울하고 무기력하며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 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 아이들이 언젠가 자신의 자녀를 낳았을 때, 그 슬픈 애착이 또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진료실 내에서도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만 지우는 것 같아, 죄송할 때가 많다. 나는 과연 내 아이에게 정신적 금수저를 물려주고 있는가, 아니면 정신적 흙수저로 만들고 있는가. 아이들의 온 세상은 부모로 가득하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좋은 경험과 추억이 많은 아이들은 사춘기 때 잠시 방황할지라도 분명히 자신의 자리로 찾아온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을 생각한다. 삶의 대부분 순간이 행복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이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내 아이의 눈에서 내가 과거 느꼈던 아픔이 자주 느껴진다면,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 아이를 대할 때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보다 지금 내 인생이 행복하지 않다면 부담 없이 전문가와 상담해 보시기를 부탁드린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기에 이들의 정신건강을 국가와 사회에서 책임지고 도와줘야 한다. 부모에 의해 일어나는 아동학대는 100% 부모의 정신건강 상태와 연관되어 있다. 왜 신체적 건강은 국가 검진으로 꼭 받게 하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예방적 조치에는 이렇게 인색한가. 법적으로 아동학대의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제2의 정인이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처음 부모가 된 가정, 입양하는 가정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신건강을 점검하게 하고 필요시에는 과감하게 상담 및 치료까지 이어지게 해야 한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불확실의 공포가 엄습한 코로나 시대다. 지친 서로의 마음에 치유의 백신과 약을 발라주는 가정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한다. 아이의 일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 면역은 부모의 환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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