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단] 병실의 기분
[아침시단] 병실의 기분
  • 김성신
  • 승인 2021년 01월 21일 16시 59분
  • 지면게재일 2021년 01월 22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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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푸른색 커튼이 사면을 에워싸고
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급히 새어 나올 때
병실에 도착한 내 귀에 얼굴을 붙이고
아버지가 귓속말을 했다
- 저 사람 방금 죽었어

6월 장맛비가 창문을 내리긋고
자판기에서 빼온 커피 잔이 흔들렸다
- 쉿, 죽은 후 얼마 동안은 아직 듣고 있대
아버지는 단 커피를 마시고
이웃 환자 다섯은 요구르트를 마신다
어제는 웃으며?다 함께 마셨었다

흰 천 덮인 병상이 나가고
가족 병문안이 일상처럼 이루어지는 동안
죽음에 관한 소문들 앞에서
칸칸이 잘라 나눠먹는 수박의 푸른 줄이
지퍼처럼 벌어졌다

젖은 그늘의 말들을 간식으로 마시고
손바닥을 펴서 낮잠 자던
그가 수경재배로 기른 유리병 속 고구마 순,

궁금한 듯 고개를 침상으로 틀며
부리처럼 잎을 내밀 때
흰 베개와 시트가 조용히 다시 깔리며
병실의 기분이 새로 완성되었다.


<감상> 죽음은 연극에서 다음 막을 준비하는 커튼 속에 드리워진다. 미완성으로 끝나는 연극처럼 죽음은 철저히 은폐된다. 호스피스 병동에 남아 있는 이들은 애써 죽음을 외면하기 위해 TV 드라마에 열중한다. 오히려 외면하지 않으려고 딴전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박이 지퍼처럼 벌어지듯, 고구마 순이 해를 향해 굴절하듯 속으로 담담히 받아들인다. 죽은 후 최후까지 살아남는 감각은 청각이다. 죽음을 맞이할 때 귀에 들리는 말들이 과연 순할 것인지 자문해 보자. 그러면 살아생전에 착취와 억압으로 얼룩질 수는 없을 테다. 그렇다고 죽은 자의 귀에 대고 욕은 하지 말자. 다 들을 수밖에 없는 영혼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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