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옷 입고 곧게 뻗은 설국의 숲 거니는 듯

자작나무숲을 올려다 보는 풍광이 겨울동화처럼 더 아름답다.

영하 10℃를 넘나드는 북극한파로 매서운 날씨가 지속되다 한풀 꺾인 지난 주말 모처럼 도심을 벗어나 인근 청송으로 향했다.

코로나 역병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청송에서 벌어지는 동계스포츠행사 등으로 몇 날을 머물면서 월드컵대회와 국내 동계체전 등으로 바빴을 터인데 아무 일도 못 한 채 시간만 보낸다. 현지 사정도 볼 겸 몇 달 전에 가본 자작나무숲이 보고 싶어 찾아갔다. 포항에서 청송얼음골에 있는 ‘청송클라이밍 아카데미’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해 한달음에 달려간다.

얼음골 인공빙폭을 보려고 몰린 탐방객들 차량이 도로를 막아 전진할 수가 없어 지체되었지만 기다림이 그리 불만스럽지가 않다. 얼음골 빙폭(氷瀑)은 인공으로 60m 절벽까지 물을 끌어 올려 주변 암벽에 뿌려 얼어붙게 한 것이다. 얼음골이란 명성답게 그곳은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에다 바위틈 사이 찬바람이 나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 정도로 차가운 약수가 뿜어 나오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소이다.

관광명소가 된 청송얼음골에는 세계적인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경기장이 있고 클라이밍센터와 경가관람석, 주차장 등 부대시설이 완벽히 갖춰져 있으며 1㎞ 정도 떨어진 내룡리에 선수숙소 겸 훈련장 등이 갖춰 있는 ‘청송클라이밍 아카데미’가 있어 이곳이 아이스클라이밍의 메카로 각광받고 있다.

이 모든 시설관리를 경북산악연맹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어 필자와는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얼음골은 청송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 역할도 하지만 국내외 관광객과 마니아들의 발길이 사계절 끊이지 않는 이름난 곳이 되었다.
 

피나무재에서 4km지점에 청송 자작나무명품숲이 있다고 안내한다.

얼음골을 지나 914번 지방도를 따라 청송읍 방향으로 10여 분 가다가 만나는 무포산 ‘피나무재’에서부터 임도를 따라 4㎞ 더 들어가면 ‘청송 자작나무 명품숲’이 있다는 안내판이 서 있고 왼쪽 임도를 따라 걸을 수 있다.

피나무재에서 본 청송 자작나무명품숲 길 안내판.

시간이 넉넉지 않은 탐방객은 자동차로 임도를 따라 자작나무숲이 시작되는 정상부위까지 가서 주차하고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서면 된다.

피나무재에서 자작나무숲까지 4㎞를 걷는 데는 그리 힘들 일이 없다. 시작점(피나무재)에서 1.2㎞ 지점에 정자가 있는 임도삼거리를 지나 무포산(霧砲山, 716m)에서 내려오는 낙동정맥길을 만나 곧장 임도 따라 2.8㎞ 더 걸으면 아래로 하얀 껍질로 둘러싼 자작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자작나무숲길 코스별 이정목이 탐방객을 기다린다.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아래로 넓게 자리한 자작나무숲이 한눈에 들어오고 숲길 안내목이 A, B코스의 이정(里程)을 알린다. 아랫길, 윗길 표시가 있지만 어디로 가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어 고민할 필요가 없다. A코스가 2㎞, B코스가 1㎞ 정도로 총 3㎞의 거리를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이곳 청송 자작나무숲은 청송군 부남면 화장리에 위치해 있으며 1996년도 8.5ha 산지에 조성된 것으로 최근 명품숲으로 가꿔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갖가지 안내와 홍보를 청송군에서 실시하고 있다. 아직은 다양한 시설이 많지 않지만 순수한 산속의 정취가 더욱 운치가 있어서 좋다.

자작나무숲 가는 임도변에 정자가 있고 그 아래에서 캠핑하는 차가 세워져있다.

임도 변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임도가 협소하고 비상시에 활용하는 길이라 가급적이면 도보로 찾아오는 게 더욱 멋도 있고 안전할 것 같다. 피나무재에서 출발하여 회귀탐방을 하면 걷는 시간이 많고 산속에서 자연을 벗하며 힐링할 수 있는 최적의 도보여행이 될 수가 있다. 빼곡히 자라난 자작나무숲을 거닐다 보면 어느 북반구 설국(雪國)의 숲을 거니는 듯 마음까지 하얗게 물드는 느낌이다. 자작나무는 한대식물(寒帶植物)이라 북한 쪽이 남방한계로 우리 남쪽에서는 자생할 수가 없어 그나마 조림으로 군락을 이루는 숲이 특색이 있어 겨울 나들이객에게는 낭만이 깃들만하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자작나무숲이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고 전국 곳곳에 조성된 자작나무 군락지가 있어 탐방객이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숲속에 나있는 나무다리가 앙증맞아 보인다.

우리 경북지역에서는 자작나무숲을 흔하게 볼 수 없지만 최근에 알려진 영양 검마산 자락 죽파리 자작나무숲과 김천 수도산 아래 숲이 있다.

‘청송 자작나무 명품숲’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리 멀지 않고 접근하기가 편해 권할만하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힐링 체험에 적합하고 호젓해 가족 단위 트레킹에 알맞은 곳이기도 하다.

탐방로 사이로 쭉 뻗은 자작나무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쭉쭉 뻗은 자작나무가 하얀 옷을 입고 동화 속 주인공처럼 들어서는 탐방객들에게 순백의 순결함을 선사하고 눈이라도 내리면 더욱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자작나무는 북유럽에서는 ‘숲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흔하며 영화나 사진 속에 자주 등장하는 눈밭 속 하얀 나무들이 모두 자작나무다.

1938년 시인 백석이 쓴 ‘백화(白樺)’란 시(詩)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

북한에 자생하는 자작나무에 얽힌 시상(詩想)이 더욱 낭만적이며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정비석의 금강산기행문인 ‘산정무한(山情無限)’에 나오는 글귀 또한 자작나무숲을 멋지게 살린다.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라는 표현과 자작나무를 ‘수중공주(樹中公主)’라고 비유한 대목처럼 다른 나무와는 사뭇 다른 행보와 자태가 감흥을 준다.

얇은 껍질에 기름기가 많아 종이로도 쓰이며 오래 보관이 가능해 옛 유물에도 자작나무로 만든 것이 아직도 전해져 오고 있다. 나무결이 곱고 단단해 가구나 건축재로도 사용되며 고로쇠나무처럼 수액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다양한 용도의 유익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자작나무는 북반구 사람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재목임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엷은 껍질이 불에 잘 붙고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하여 자작나무로 불리는 재미난 이름의 나무다.

겨울철에 특히 빛을 발하는 것이 하얀 눈과 하얀 껍질의 자작나무 그리고 파란 하늘이 연상하는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자작나무숲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보다 아래에서 쳐다보는 게 훨씬 맛이 있다. 하늘로 쭉쭉 뻗은 자작나무 숲 위로 파란 하늘이 어른거리고 겨울새라도 날아오르면 더욱 멋을 더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청송 자작나무 명품 숲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겨울동화를 그려보는 것도 고달픈 일상을 털어버리는 힐링의 순간이 될 수 있어 좋다. 하얀 나무숲을 거닐며 떠오르는 노랫말이 더욱 가슴을 울리는 듯하다.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에 나오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라는 노래 한 소절이 숲 속에 퍼져 울리면 맑은 나뭇가지에 앉았던 산새가 바람처럼 떠난다. ‘청송 자작나무 명품숲’에서의 명상과 치유가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겨울이야기다. 추위를 잊고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는 군상들에게 아직은 하얀 겨울임을 일깨우는 자작나무숲에서의 한나절이 오랜만에 자유로움으로 다가 온다.

‘청송(靑松)’은 이름만큼이나 참으로 맑은 곳이다. 산소탱크에서 무한정 내뿜는 싱그러움을 마음껏 들이키는 ‘산소 카페’ 자체다. 부근에 유명한 주왕산이 있고 가까이 물안개 자욱한 몽환적 풍경으로 이름 난 주산지 물속에 잠긴 왕버들나무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영화 속으로 안내하는 청송이야 말로 최상의 힐링 최적지가 아닐까 한다.

겨울 속 ‘청송 자작나무 명품숲’에서 ‘걸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간 스물한 번째 ‘힐링 앤드 트래킹’ 이야기를 마친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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