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소속 고(故) 최숙현 선수에게 가혹 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팀닥터 안주현 씨에게 22일 대구지법이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안 씨에게는 8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7년간 신상 정보 공개, 청소년 교육기관 등 관련 기관 7년간 취업 제한 명령이 더해졌다. 안 씨는 선수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유사강간, 강제추행,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하루 전인 지난 21일에는 수원지법이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를 3년 넘게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재범 전 코치에게 징역 10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위력으로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혐의를 부인하는 등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두 사건으로 인해 체육계 폭력의 실상이 드러나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2018년 12월 심 선수의 폭로로 체육계 폭력문제가 공론화 되기 시작했다. 대한체육회와 정부는 가해자 처벌 강화와 스포츠윤리센터 설립,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 체육 개선 등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도 최 선수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심 선수의 폭로 두 달 뒤부터 최 선수는 대한철인3종협회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는 물론 소속 기관인 경주시청과 경주경찰서 등에 피해를 호소했지만 적극적 조치를 받지 못했다. 결국 최 선수는 지난해 7월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심 선수 폭로 뒤 최 선수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허사였다.

안 씨에게 징역 8년이 선고된 직후 일각에서는 형량이 무겁다는 반응이었지만 최 선수의 아버지와 동료선수들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비해 초범이라는 이유로 검찰 구형보다 약한 형량이 선고된 것은 아쉽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다.

항소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두 판결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체육계 일선 지도자에서부터 최상층까지 얽힌 정실주의와 권위주의로 인해 자행돼 오던 위계에 의한 폭력에 대한 단죄이기 때문이다. 체육계의 악습과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감독과 코치에 과도하게 쏠린 권한과 견제 기능의 상실, 인권 경시 풍조를 쓸어내기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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