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원 대구대학교 법학부 교수·전 한국헌법학회 회장

인류의 역사는 ‘다름’과 ‘같음’에 따른 전쟁과 평화의 반복이었습니다. 인간이 공동체를 구성하여 존재하는 한 개인이든, 민족이든, 국가이든 같음을 매개로 하여 결합하고 평화를 유지하였던 반면에 다름을 이유로 반목하고 전쟁을 일삼아 왔습니다. 다름에서 생존하기 위한 긴장과 경쟁은 발전을 구가하게 한 것이기도 하였지만, 이로 인한 폭력과 전쟁은 인류의 발전을 퇴행시킴과 동시에 인간성의 말살을 획책하였습니다. 인류에게 잔혹한 인간성의 말살을 경험하게 한 지난 세기에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또한 다름이 그 이유였습니다. 문명국가에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지구상의 곳곳에서는 이러한 일이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곳곳에 직면하고 있는 서로 간의 반목, 대립과 갈등도 다름 때문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부자와 가난한 자 간, 도시와 농촌 간, 수도권과 지역 간, 사업자와 노동자 간, 남자와 여자 간,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 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같은 국민이기 때문에 실은 다름이 아닌 데에도 골 깊은 편을 가르고 있습니다. 규모면에서의 우리가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하여 현시점에서 ‘과거보다 불행한’ 삶이라고 푸념짓습니다. 공존은 ‘더불어 잘 사는 사회’,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사회’일 때 완성체가 됩니다. 다름에서도 공존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나의 것은 내려놓고 타인의 것은 받아 드리는 자세가 시급한 때입니다.

1960년대에 들어 다양성은 더 많은 상호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세계적 인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름은 배척에 가까운 것이라면 다양성은 포용에 가까운 것입니다. 다양성은 주로 민족적·인종적·종교적·언어적 소수민족에 관한 것이거나 또는 서로 다른 문화에 기인한 문화적 차이에서 소수자를 보호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다양성의 전제는 여러 개의 집단 중에서 열악한 지위 또는 주류가 되고 있지 못한 집단에 대한 배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국가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최근 들어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증가로 인하여 민족적·문화적 다양성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다문화·다원화사회로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피해갈 수 없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다르게 차별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얼마 전 경기도 포천의 농가 하우스에서 혹한을 못 견딘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경기도가 뒤늦게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늘 보던 뒷북정책입니다. 다문화가정도 당당히 우리 국민임에도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하여 문화적·경제적으로 소외되기 십상이어서 구도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주류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 자녀들이 국가와 사회의 주류로 진입하지 못한다면 그들만의 계층을 형성하게 되어 봉합할 수 없는 분열과 갈등을 야기 하게 됩니다. 그 때에 직면하여 이를 치유하려면 너무 늦게 됩니다. 다문화가정이 ‘홀로서기‘를 이루고 주류사회로의 진입이 가능하도록 국민적 포용과 국가의 문화적·경제적 지원을 다 하여야 합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다문화가정지원센터 등에 의한 지원에 머물지 말고 적어도 그 자녀들이 교육에서만은 소외됨이 없이 대학교육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학비면제 등의 경제적 지원을 실행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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