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 수필가·전 상주문화회관장
김종한 수필가·전 상주문화회관장

인생 궁극적 목표가 ‘행복한 삶’이다. 사람 접촉 피하는 비대면 코로나 일상 이전인 설날은 만나면 “다들 별고없이 잘 있는가” 안부 인사를 한다. 모두들 몸과 마음이 두루 편안하여 행복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교환한다. 결혼하면,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 된다’ 덕담을 한다. 임종을 앞둔 망자도 남은 가족에게 끝말이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유언 합창이다.

속세 사람들이 추구하고 갈망하는 행복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물건처럼 저울에 달아 무조건 많으면 되는가. 아니면, 얼굴 마냥 거울 앞에 비추면 알 수 있는가. 행복은 물질적인가. 정신적인가. 영적인가. 깊숙이 밤이 새도록 생각하면 뜬구름 같은 추상적인 ‘행복’ 밤이 새도록 고민해도 아리송하다.

사람들은 왜! ‘행복’을 남과 저울질해가며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여 구하려고만 하는가. 그렇다면 행복은 끝이 안 보여 사라 질 것이다. 행복은 토나 조건을 달면 행복이 아니고 욕심이고 과하면 불행도 될 수도 있다. 세속적인 행복의 체감을 계량화와 수치화해서 그 기준에 들면 만족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일까.

행복을 빙자한 공허한 욕망의 허상일까. 행복은 물질도 될 수 있지만 정신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본다. 행복은 철학자 괴테 말처럼 가까운 데도 있고 찾기도 쉽고 가지기도 쉽다고 했다. 다만 인간이 교만하고 욕심이 차서 못 보고 못 찾아서 헤매일 뿐 주변에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행복은 만족한 삶만도 아니다. 불행은 결핍에 있기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좌절감에 있다. 그것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행복의 조건들은 만년 1등이고 꽉 찬 포만한 상태도 아니다. 재산이든, 외모든, 명예든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이다. 모자람이 없는 빈틈없이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쌓여서 터질 까 바, 바로 그것 때문에 근심과 불안과 긴장과 불행이 교차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의 삶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행복은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보다도 정신적인 여유에서 생긴다. 봉사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고 한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니까 더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개인의 취향과 잣대에 따라 다르다. 물질적으로 차야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 뜨시고 배만 불러도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다.

‘욕망을 버려라’라는 석가나 ‘작은 것에 만족하라’는 철학가 디오게네스는 거지와 다름이 없는데도 최고의 행복을 누렸다니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배고 누웠으니 낙이 그 가운데 있더라’는 공자의 말씀인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소박한 유유자적(悠悠自適)삶이 코로나로 지쳐 모두가 힘이 드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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