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

우리나라 헌법 제1조 2절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헌법에 명기된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국가의 주인은 누구냐”는 논쟁으로 시끄럽다. 여권 정치인과 인사들은 선출된 권력이 국가의 주인이며 권력 결정권자라는 듯한 발언들을 쏟아 내고 있다. 지난 연초 조국 전 법무장관이 자신과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집중되자 “국민들은 검찰개혁을 요구하면서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묻고 있다. 국민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견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정세균 총리의 측근 이원욱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8월 최고위원 후보 연설회에서 검찰 개혁을 강조하며 “임명받은 권력이 선출 권력을 이기려고 한다.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다고 했다. 여기서 한술 더 떠 민주당의 김두관 의원은 지난 연말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복귀를 판결하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권력을 정지시킨 사법 쿠데타에 다름 아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헌법적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분노가 넘치는 듯한 글을 페이스 북에 올렸다. 김 의원은 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도 했다. 어찌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동일 선상에 놓고 보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가 있는가. 가당찮은 발언이다. 이들의 이런 발상의 발언은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세지고 있다.

감사원이 이달 중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전 과정에 대한 위법성이 있는지에 대해 공익감사에 착수하자 여권이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해 “감사원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집중 공격을 시작했다. 지난 14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 감사원장에게) 집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듭니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하라 했더니 주인 행세를 합니다”고 썼다. 감사원이 하는 일은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목적으로 한 헌법기관’이다. 감사원이 행정기관과 단체 및 공무원의 직무를 감사하지 않으면 헌법적 소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을 보좌한 최고 책임자였던 임 전 실장이 감사원의 업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 말은 아닌 듯싶다. 어찌 이런 놀라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을까. 임 실장의 이 글에는 감사원을 말 잘 듣는 충견 정도로 보는듯한 인식이 비치고 있다. 어찌 헌법에 따라 감사원장이 제 할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일탈’과 ‘정치’로 비치는가.

그렇다고 이들이 국민 주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단지 이것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사고에는 왕조시대의 유교적 민본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는듯하다. 유교적 민본사상에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뜻은 펴고 있으나 무엇보다 왕의 덕치(德治), 왕도(王道), 위민(爲民)을 민본의 맨 앞에 세우고 있다. 이 경우 백성은 결정권이 없는 대기업의 소액주주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그래서 이들 용어에는 왕이 어리석은 백성을 올바로 이끌고 은혜를 베푼다는 의미가 함포되어 있다. 이러니 임명된 권력이 선출된 왕의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에는 도저히 참지를 못하는 것이다. 오는 4월 서울시장 보선에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온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며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입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보배라는 뜻이다. 같은당의 우상호 의원도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고 썼다. “든든한 대통령을 가졌다”고도 했다. 두 사람 모두 ‘문비어천가’를 합창했다. 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문비어천가를 외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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